조선과 함께한 선교사, 언더우드 다문화 인물시리즈 8
길진봉 지음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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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는 개신교와 천주도, 동방 정교,성공회 등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여러 종교즐이 모두 포함돼요.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신교와 천주교입니다.(-23-)


새문안교회는 1887년 언더우드에 의해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교회입니다.장로교는 감리교 등과 더불어 개신교의 한 종류입니다.서울 정동에 있던 언더우드의 집안에 있는 사랑방에 모여 예배를 드리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초기에는 '정동예배당'으로 불렸으나,1907년 행재의 위치로 옮긴 다음부터 '새문안교회'라 불렸습니다. (-68-)


언더우드 목사의 빛나는 업적은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었어요.그 뒤에는 묵묵히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준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고향인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에서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언더우드 목사 못지않은 깊은 신앙심과 인내심, 그리고 조선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1851년 미국에서 태어난 호튼은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1888년 조선에 들어왔어요. (-85-)


언더우드 목사는 1859년 영국 런던의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존 언더우드와 엘리자베스 그랜트 마리 사이에 태어나게 된다.영국계 미국인 언더우드는 조선으로 넘어와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다.선교활동을 하기 위해서, 1885년 4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조선땅을 밟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고아들을 거두어 기르기 시작하였고, 아내 릴리어스 호튼은 의사로서,명성황후의 주치의가 되었다.언더우드 목사는 성경 연구와 지금 연세대학교의 전신 연희전문학교를 세워서 ,조선에 개신교의 뿌리를 심게 되었고, 1916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조선을 사랑한 영국계 미국인, 아내와 함께 낯선 곳에 살아간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하지만 개신교의 본질에 따라서 ,조선인들을 감화시켜 나갔으며,무지로 인해 생기는 조선인의 핍박을 구제하기 시작하였고,선교와 사역, 신학교 교육의 목적을 확산하게 된다.


즉 미국을 건너가 조선이라는 미지의 곳에 넘어오면서,선교활동을 하는 것,명성황후의 주치의로서 조선 땅에 교회를 세웠으며, 1916년 미국땅에 묻히게 된다.하지만 조선을 사랑하였던 언더우드는 1999년 조선 땅에 묻히게 되면서,그 뜻을 이어가게 된다.언더우드의 목사의 아들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 언더우드 목사의 손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2세까지 이어지게 되었고,한국이름 원한경, 원일한 을 얻게 된다.소위 조선을 사랑한 외국인,조선을 아끼는 외국인으로서,우리에게 알려진 언더우드의 삶을 보면,하나님의 사랑이 미국이나 서구권 뿐만 아니라 조선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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