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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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친부였다.이브 엔스러는 사과받지 못했고 그는 사망했다.작가로 성장한 엔슬러는 자신이 받아야 했던 사과를 스스로 '지어낸'다. 살면서 가장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7-)


너무나도 분노에 차 있었기에 , 이 세상을 떠나며 난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하지 않았지.네가 내 분노의 파편에 깊이 상처 받아 피 흘리기를 원했고, 죄의식과 절망으로 괴속 괴로워하며 남은 인생 내내 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지, 왜 아버지가 원한 딸이 되지 못했는지 자문하며 매 주위를 맴돌도록 만들 작정이었어. (-25-)


사람들이 종종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목을 맨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차렸어.자신이 가치 없는 가짜가 아닌가 하는 존재의 가장 깊은 의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지.내 지위를 끌어올리고 유지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했단다.자신의 한심한 생각에 대한 나의 경멸을 눈치챈 사람들은 겁을 먹고 말거든.그렇게 나는 매력과 멋진 용모로 사람들의 정신을 흐뜨러뜨리고 그들을 끌어당겼단다. (-53-)


신뢰란 형태가 없는 동시에 특정한 형태를 갖고 있단다.확신, 자신감,고요함 같은 무형의 자질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지.맞아 쓰러졌던 경험이 있고 스스로 무가치한 바보라고 느끼도록 강요받았던 사람들은 절대 그런 확신과 침착함을 풍길 수가 없어.그들은 필사적이기에 필사적으로 보인다. 미움도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기에 감정 과잉,과장,허세 같은 극단적인 수단에 의지하게 되지. (-107-)


내내, 난 내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게 만들었다.언제나 불안에 떨며,이름 붙일 수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속에서,나는 너를 네 아비의 죄를 전달하는 자로 만들었어.마치 전사처럼,부상자처럼, 병의 원인이 될 돌연변이 세포처럼 내 죄를 짊어지게 했지.마치 더럽혀진 몸에 새겨진 주홍글씨인 양 넌 그 임무를 짊어졌다. 한 번 쓰고 버리면 그뿐이라고, 쉽게 잊히는 존재라고 네게 쓰여 있는 것만 같았어., (-157-)


다섯 살짜리 딸의 몸에 손을 대며 자신의 연인이자 신부라고, 생명력과 활기의 원천이라고 여겼으며, 딸이 좀 더 자라자 죽기 직전까지; 때리고 목을 조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는 끔찍하다.어린 시절 자신은 사랑을 받아본 적 없고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억눌리며 살았기에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고, 딸이 재능을 펼치는 것을 질투했고 자신의 잘못을 밝힐까 봐 두려웠다고 털어놓는다. (-195-)


저자 이브 엔슬러는 1953년 생이며,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어릴 적 아버지의 성폭력과 강간으로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고, 절망감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자신의 어린 모습과 무기력함의 근원, 약자에 드리워진 공격성은 스스로 움츠러들게 된다.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이브 엔슬러는 너무나 유약하였고,나약하다. 공교롭게도 사과받아야 할 대상,용서 받아야 할 대상은 이제 죽고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이다.분노를 하고 싶어도, 사과를 받고 싶어도,용서를 하고 싶어도 그 대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브 엔슬러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위기이며, 살아가야 할 명분조차 잃어머리게 되었다.희극작가로서,자신의 상처를 해소할 방법은 글이었고, 책을 통해서 담담하게 자신의 불운한 인생을 써내려가고 있었다.특히 이 책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하여,피해자가 가해자와 동일시하면서, 상상력을 톤해 써내려간 일종의 상상력이자 독백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사랑한 것처럼,사과하지 않았지만, 사과 받은 것처럼, 돌이켜 보면, 우리 주변에 수많은 여성들이 이브 엔슬러처럼 살아가고 있었다.자신을 파괴하고,주변 사람들을 파괴함으로서, 그들은 사람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도리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았고,물어 뜯게 된다.바로 이 책에서 비겁함이 느껴졌고,그 안에 잔인함과 혐오스러움이 느껴졌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그 누구도 나 자신을 폭력적으로 만들수 없고, 인형처럼 가지고 놀 수 없다.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이브 엔슬러,하지만 자신의 상처는 현재 자신에게서 단절되어야 한다.그것은 아버지의 인생이 그런 삶을 겪었고,그것이 딸에게 되물림되었기 때문이다. 이브 엔슬러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자신의 바로 밑 아이들에게 되물림될 수 있었다. 자의식을 가진 저자는 그렇게 스스로 상처에 연고를 바름으로서, 스스로 치유해 내고 있었다.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나를 위로하는 책이 <아버지의 사과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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