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성당 이야기
송차선 지음 / 일상과이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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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러면 저를 쓰세요."

이렇게 응답한 후에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세상이 그렇게 밝고,눈부시도 ,환희로 가득 찰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에에 그렇게 밝은 느낌은 처음 받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놀랐습니다.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고,저는 천하를 다 얻은 느낌으로 기쁨이 가득 찼지요.온전히 주님께 다 드린다는 것은,이제는 제 존재의 모든 것이 주임의 뜻이므로 바로 신학교 입학 수순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21-)


가회동성당은 아마도 당시 사대문 안의 성당 중에서 신자 수가 가장 적은 성당이었을 겁니다.성당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까이에 청와대가 있어서 건축물이 고도제한을 많이 받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낙원상가를 제외하고는 관할 내에 아파느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교적신자 수는 당시 약 1,600명에 불과한 작은 성당이었지요. (-51-)


"그러면 위원장님, 파이프오르간을 포함해서 제대, 십자가, 십사처, 예수성심상, 감실, 성물 등을 포함해서 건축부대비용으로 제가 직접 10억을 마련하겠습니다.그 10억 한도에서 건축부대비용으로 제가 어떻게 사용하든지 문제 삼지 말아주세요.물론 부대비용으로 사용하고 남으면 모두 본 공사비용에 넣겠습니다."
"순진하기도 하십니다.요즘 같은 불경기에 신부님이 무슨 재간으로 10억을 모으신다는 것입니까?" (-100-)


"최소장은 처음으로 이런 규모의 현장 전체를 맡아서 지휘한 겁니다.이번에 큰일을 치르면서 많이 배웠을 겁니다.경험도 그만큼 누적되었고, 훌륭한 직원이 되었으니 5억 원은 직원교육으로 투자했다고 생각하시고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인호 소장은 이직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평화건설에서 현장 일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습니다.그리고 정산 이후에 가회동성당은 건축상을 받기 시작했지요.(-148-)


서울 가회동 성당은 종로구에 있는 성당으로서, 비와 김태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유명해진 곳이었다.소위 한국가톨릭의 성지이며, 저자는 신부로서 가회동 성당 재건축에 책임을 맡게 되었다.신학교에 들어갔지만,신학생이 되기 전 대학교 전공이 건축이었던 송차선 신부는 쓰레기나 다름 없었던 건축 관련 전공 지식들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그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느끼면서,하나님께 사역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처음 공사비 10억을 모으는 것은 막막하였다.하지만 한국 천주교 교회의 성지, 가회동 성당을 그냥 방치할 수 없었고, 스스로 건축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형화건설 최인호 소장과 송차선 신부가 함께 하였던 가회동 성당 건축사업은 대단위 사업으로서, 못 하나 박는 것, 장도리 하나 치는 것,장비 하나 허투루 쓸 수 없었다.그 과정에서 처음 예상했던 공사비를 훌쩍 넘기게 되었고, 그 부족분을 평화건설 몫으로 남게 되었다.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가회동 성당 건축이 만만치 않앗음을 깨닫게 된다.죽은 지식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였기에 ,스스로 다시 채워 나가게 된다.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으며,가회동 성당의 궁극적인 가치를 들여다 보았다.의미가 있고, 뜻이 맞다면, 부족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가회동 성당 건축에서 송차선 신부는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남들이 감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대공사,그 공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고,가회동 성당은 한옥성당으로서,2014년 건축문화대상과 한옥상, 서울시 건축대상, 서울시 시민공감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서울 종로구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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