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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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그들은 헛것을 쫒고 있었다.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그들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맞추어 충과 의의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0-) 


정유년 9월 14일 밤에 임준영으로부터 두번째 첩보가 도착했다.바람이 잠들어 바단느 고요했고, 달은 보름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섬 그림자가 물에 비치어 ,물과 하늘이 뒤바뀐 듯 했다.임준영은 직접 오지 않고, 그 수하의 척후병을 보냈다.강진의 토병으로 열일곱이라고 했다. (-68-)


정유년 겨울에, 다가오는 적의 가까운 밤마다 내 몸에 느껴졌다.승군 정탐들이 이틀 도로 산을 넘어와 수군거리는 적정을 보고했다.적의 육군이 순천에 집결했으므로 우수영은 육지 쪽 뒤통수가 위태로웠다.우수영에서 머뭇거리다가, 어느 날 밤, 육지와 바다에서 협공하는 적의 야간 기습을 받고 발진하기도 전에 전멸하는 악몽에 나는 오랫동안 시달렸다. (-129-)


정유년 섣달 그믐날 저녁에 장졸들을 수영에 모아놓고 송년 단배례를 가졌다.군사 조련장 한가운데 대장기를 세워 놓고 모닥불을 질렀다.김에 만 주먹밥을 만들고 파래로 죽을 끓여 장졸들을 먹였다.모닥불 주변에서 군관들이 윷을 놀았다. 수졸들이 잡아온 생선을회쳤고 서덜을 모닥불에 구웠다. (-175-)


정유년 가을에서 무술년 봄 사이에, 나무를 베어서 전선 서른 척을 새로 만들었고 물고기와 바꾼 쇠붙이를 녹여 총통을 만들었다.내륙 관아의 부패한 수령들과 아귀다툼을 해가며 군량을 모앗고 화약을 모았다.군량을 빼돌리고 징집 대상자를 빼돌리는 여러고을 수령ㄷ들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적어서 이들을 처형해잘라는 장계를 조정으로 보냈다. 장계는 조정에서 공개되었다.그 지방 수령들의 뒤를 봐주던 조정 대신들로부터는 아무런 회신도 조치도 내려오지 않았다. (-250-)


적의 살기는 찬란했다.먼바다에서, 여러 방면의 적들은 합쳐지면서, 다시 거대한 반원진으로 재편성되고 있었다.적선에 가려 수평선은 보이지 않았다.적의 반원진은 바다 전체의 크기만한 그물로 다가왔다.아침 햇살 속에서 수천의 적기가 바람에 나부꼈다.적의 반원진은 더욱 다가왔다.적의 전체였다.내 앞에 드러난 적의 모든 것이었다.적들은 수군 뿐 아니라, 철수하는 육군 병력 전체를 배에 싣고 있었다.적의 전체는 넘실거리며 다가왔다.적들의 이물에서 흼 물기둥이 깨어져나갔다. (-315-)


신이 거느린 수군은 원래 6천 2백 명입니다.그중 금년 2월부터 지금까지 병들어 눅은 자가 6백명입니다.겨우 남아 있는 군졸들도 먹는 것이 조석으로 불과 두 세홉에 불과합니다.배고프고 고달픔이 극도에 달해,노를 젓고 활 당기기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순천, 낙안, 보성, 홍양 고을의 군량 680석을 지난 6월에 이미 모두 실어다가 먹었습니다. (-343-)


원균이 죽고 의금부에 갇혀, 고문에 의해 몸이 피폐해진 이순신이 원균을 대신하여, 나서게 된다.김훈의 <칼의 노래>는 바로 이 시점부터 시작되었다.전장에서 조선인에 의해서 자신의 업적을 강탈당하다시피 하였던 이순신은 다시 전장에 올라서서 , 스스로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바다의 해신, 죽음 앞에서 두려운 존재,그 존재 안에서 스스로를 다잡아 나가게 되었고, 깊은 바닷 속을터전삼아서, 잔쟁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전쟁은 잔인하고, 결국 현실이었다. 피를 부르고 살을 부르는 전쟁 속에서 승리를 반드시 가져와야 했다.적장을 죽이고, 코를 배어야 하는 현실,헛구역질이 나오는 그 순간, 노린내와 비린내가 교차하고 있었다.거친 바다,울돌목,들어갈 순 있어도 나갈 수 없는 그 길목을 이순신은 선택하게 되었고,학익진을 펼쳐서 적을 섬멸하게 된다.열세척의 배,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았고,일본의 교두보를 저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순신의 삶과 고뇌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전쟁을 쉽게 생각한다. 전재을 겪어보지 얺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현실이다.전쟁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노린내와 비린내가 느껴지는 본능에 충식한 후각,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항상 전쟁에 대비해 있어야 했고, 스스로 전쟁의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즉 이 책은 이순신의 마지막 순간, 1598년 무술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하고 았었다.조선을 지키고자 하였던 그의 눈부신 활약상, 그는 죽었지만,그의 정신은 현존하고 있었다.현실 속의 전쟁을 가상의 공간 안에서 텍스트로 적셔가는 그 여백 속에서 조선 수군의 활약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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