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인간
백지혜 지음 / 책과나무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전신 거울 앞에서 오른쪽, 왼쪽, 이리저리 허리를 돌려 가며 자신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던 여자는 올해 20살 숙녀답게 은은한 색감이 매력적인 파스텔 톤의 민트색 카디건을 새초롬한 표정으로 걸쳐 있었다. (-8-)


영천은 낡은 가죽 소파가 자신을 온전히 끌어안는, 특유의 기분 좋은 느낌을 완벽하게 즐기며 정작 TV가 아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화병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11-)


붉게 뻗은 큰 꽃잎들이 고급스럽게 어우러진 화려한 포인세티아 꽃다발이었다.동준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아름다움을 품에 끌어안자 OHC의 감성만이 만들어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는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64-)


아담은 이성적인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아가씨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저는 아가씨를 보호해야만 합니다. 그게 제 존재의 이유입니다. 따라서 제게 소중한 그앱을 지워 버리려는 아가씨의 행동은 제지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가씨에 대한 복종과는 다른 저의 기본적인 철칙입니다.매우 부끄럽긴 하지만, 아까처럼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신다고 해도 절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브는 두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아담의 말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논리적이었다.이브는 반박할 근거를 생각해 내지 못해 강제로 침묵했다.역시 2호형은 똑똑했다.생각해 보면 천하의 이세돌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했다.과학기술이란 그런 것이다.그렇게 이브는 패배감을 합리화했다.역시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었다. (-132-)


하얀 섬광이 또다시 이브의 방안을 번쩍였고 이브는 보능적으로 아담의 손을 잡았다.그의 손은 참 따뜻했다.아담은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손에 포개진 이브의 손을 바라보았다. 

"뭐...기도하는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돼."
"해석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말씀하십시오."(-194-)


아담은 물기를 적당히 머금은 대걸레로 대리석 바닥을 밀고 있었다.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슥슥 닦이는 대리석 재질의 특성을 아담은 참 좋아했다.그 덕에 매일 새벽, 화원으로 배송되는 싱싱한 꽃들이 자신만의 다양한 색채를 청결하게 내뿜을 수 있었다.아담은 자신의 검은 센서까지 덩달아 화사해지는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250-)


2호형에게 사람의 장기를 비롯한 안면이식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엄격히 법으로 금지된 불법이었음에도 강진이 그 일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게 아담은 도형의 20대 젊은 시절의 얼굴로 태어났다. (-312-)


진시황도 영생을 얻지 못하였고,나폴레옹도 마찬가지이다.불로불사의 약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국 얻지 못하고 죽음을 다다르게 된다.21세기 지금 현재 우리는 두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말그대로 진시황처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인간성이 사라질 수 있는 불안이 존재하는 세상이다.이 두가지 감정은 우리의 삶과 엮여 있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며,그 시점은 2050년 미래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영천이다.20150년 현재이니까 ,영천은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그리고 책에는 아담과 이브가 등장한다.아담은 제2형 사이보그이며, 이브는 제1형 인간이다.인간 곁에서 사이보그가 하는 일은 이브에게 남자대행 서비스,인공지능 기반 사이보그다.하지만 이브는 아담 곁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되고,삶에 있어서 점차 의지하게 된다.책에서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며,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영천은 화원을 운영하면서,이제 세상을 살아갈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그리고 그에게는 영생인간이 될 수 있는 나노봇 수술이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게 되었고, 죽음을 기다리면서,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영천 과 가까운 지간, 이브의 삶,이 두 사람의 삶은 서로 비교가 되었고,아담의 존재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성을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이브이고, 내 곁에 논리적인 아담이 있다면,어떻게 생각할까.나를 객관적으로 보면서,항상 논리적으로 말하는 아담이라는 존재는 매력적이면서도 상당히 정 떨어지는 인물이다.소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싸가지 없는 아이가 바로 아담의 또다른 모습이다.즉 이 소설은 우리 스스로 감정에 치우친 인간의 불완전함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그로 인해 완전한 논리력을 갖춘 또다른 존재를 원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설령 앞으로 30년 뒤 아담과 같은 존재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인간은 그로 인해 불평불만을 하지 않을 것인가,아니면, 논리적이면서,따박따박 대꾸하는 아담과 같은 존재를 보면서,감정적인 인간으로 회귀할 것인가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감정적인 인간과 논리적인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2050년 신세계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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