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꽃 - 운명에 맞선 당당한 도전
문혜성 지음 / 매직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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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경기도 동탄은 아주 시골이었고,오산역에서 내려서도 8km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산간벽촌이었다.손녀 손자들까지 우리 식구 모두를 이끌어야 하셨으니...지금도 난 우리 할아버지의 용단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과수원집으로 이사하던 날,엄마는 짐 트럭이 신작로에 멈춰 서자 앞으로 살 집을 건나다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않을 정도로 기가 막히셨다고 했다. (-35-)


그런데 그날 그렇게 집에 안 간 것이 얼마나 천만다행이었는지 모른다.그날 통학 열차에서 생선을 실은 트럭과 달리는 열차가 크게 충돌했는데 그 칸이 바로 여학생 칸이었다.여학생들 몇 명이 사망했다.생선과 범벅된 여학생들의 사고 상황이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그러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렇게 그날도 언니는 언니 생일파티로 나를 위험한 곳에 안 가도록 해주었다. (-79-)


해방직후 중학 5년을 졸업할 무렵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늘 불안하여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는 엄마의 육촌동생 손종아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늘 비상대비까지 했다고 한다.그러나 삼촌은 근본이 나쁘지 않아 누구를 때리거나 못된 행동은 하지 않았다.시절이 해방 후 격동기라 정국은 어수선했고 젊은 혈기에 사상 등을 논하면서 각종 모임을 하니 어른들이 더 불안했었던 것 같다. 결국 1946년 할아버지는 식구를 동탄으로 이끄시는 커다란 결단을 내리셨다. (-120-)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버지는 너무 좋아하시며 "너도 이제 결혼적령기이고 무엇보다 부부연이란 일생에 그리 여러 번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시며 "그간 네가 고생한 보람으로 집안도 안정되고, 성원도 군에 가고, 아이들도 컷으니 이젠 아버질 믿고 동생들을 맡기고 그 사람 의견을 따르도록 해라."라고 하셨다. (-186-)


당시 40세 정도의 김영삼 씨는 너무 멋있는 훈남이었다.약간 이국적인 느낌도 있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외모에 몸짓이나 제스처가 아주 멋져 보였다.그 해 제6대 대통령 선거가 67년 5월 3일이고 이어서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김영삼씨는 몸시 바빳다.겸사겸사해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몇 명의 선후배에게 인사를 함께하고 왔던 것이었다. (-200-)


저자 문혜성의 본명은 문명자였다. 일본식 이름 속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일본에 의해 시작된 미국의 진주만 공격이 있었던 해, 1941년 7월 17일 음력 유월 스무사흗날, 지금의 종로구 돈화문 옆 현대사옥 자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소학교를 다니던 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부농이었던 문씨 집안에서 성장한 저자는 전쟁이하 암울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1946년 가족 전체를 가까운 허허벌판 동탄 인근으로 모두 옮기게 되었다.할아버지 주도의 가족 대이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시대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공산당을 무찌르자고 외쳤던 반공 교육 때문이었고,그로 인해 화가 집안에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에는 저자의 불행도 엿볼 수 있었다.저자의 엄마는 임신 휴유증으로 마흔이 되는 해에 엄마는 돌아가시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스스로 엄마의 역할을 도맡아 하였고, 집안을 일으키는 소녀 가장이 되어야 했던 그 지난날의 고통과 시련,고난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게 되었다.자신과 가족을 함께 챙겨야 한다는 그 의무감 속에서 창덕여고를 졸업하였고, 자신의 뜻에 맞는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저자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강인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즉 집안의 책임과 의무에서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였고, 비로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사회에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바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였다.물론 저자처럼 부농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 6.25 동란 전후의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상기시킬 수 있게 되었다.소위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1946년,할아버지의 의지에 따라서 가족 대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가 웃어른을 우선시하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주의 적인 가정 속에서 성장한 저자가 결혼이후,스스로 사회에 나가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으며, 저자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꽃을 피워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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