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Z.A (Zombie Apocalypse) 102년 5월 4일

달에서 채취한 석영을 정제해 만든 관측장으로 본 지구는 온통 잿빛이었다.왠지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K-기준은 공용어인 영어로 중얼거렸다.
"지구는 밝고 찬란한 녹색이라고 하지 않았나?"
"왠걸 ,데이모스보다 더 어두운데.," (-15-)


맙소사,맙소사.머릿속이 텀 비는 것 같다.국무총리라는 작자가 핵폭탄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미국에서 발생한 아칸소 독감의 발병률과 사망률이 생각보다 높으며 그에 따라 미국 본토와의 모든 인적 교류를 차단한다는 것이었다.이미 미국과의 협의가 끝났고,곧 그들의 요청대로 응급 의료진을 파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87-)


1.좀비는 느리다.하지만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
2.냄새가 지독하다. 향수가 좀 필요할 것 같다.
3.배고프면 좀비건 인간이건 먹어치운다.
4.물리면 좀비,먹히면 식량.
5.시력은 떨어지는 게 분명하다.청각과 후각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145-)


죽음이 두 번 겹친 날이라,최후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이대 부근은 온통 불길에 휩싸였다.신촌 기차역과 나란히 붙어 있는 밀리오레 건물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인간들은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뛰어다녔지만,좀비들은 불을 짊어지고도 느긋하게 그들을 추격했다.붙붙은 좀비들을 피해 신촌역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도 눈물이 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죽음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이제는 슬픔도 느껴지지 않고 감정이 마비된 것 같다. (-189-)


머신건던 사수가 괴성을 지르며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빛이 퉁퉁거리며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K-기준은 묵묵히 걸어가 라이플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보병들은 경악하더니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좀 쉬게 해주는 것뿐이야.지구 충격이라는 것도 못 들어봤나?이러다 탄약을 다 낭비하고 말 거야.다른 사람이 머신건을 잡아." (-241-)


우리는 동시에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스쿠터가 반도을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자빠질 때까지,와당탕 넘어지면서 그녀와 부딪치는 바람에 이마가 얼얼했지만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녀가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짧은 입맞춤 후 그녀는 두렵지만 이겨내보겠다고 말했다.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대답했다.그러자 그녀는 방금 키스한 내 이마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이미 세상이 끝났는데 뭘."(-311-)


인간이 가장 무서워 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존재는 악어,사자,호랑이,고래와 같은 거대한 동물이 아니었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 하는 존재은 인간과 가장 흡사한 존재이다.동물을 사냥할 때와 인간을 사냥할 때,전략과 전술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씨를 말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잔인하고, 치열하게 전쟁을 하면서,자신을 해치면서,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게 된다.


소설은 바로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미국 아칸소주에서 발생한 아칸소 감기는 자연적인 발생이 아닌 인간의 실수에 의해 나타난 것이며, 그로 인해 인간 스스로 죽은에 도달하게 되었고,그 빈자리를 불명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좀비가 차지하게 된다.소설 속에서 k-기준이 100년이 지난 뒤 데이모스를 지나 지구를 보았을 때,지구의 모습이 푸른 빛이 아닌 잿빛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적을 이기려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병법서에 있어서 절대적인 명제이다.인간을 잡아먹는 좀비와 인간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인간의 강점과 좀비의 강점,인간의 약점과 좀비의 약점을 명확하게 안다면,자신의 약점을 축소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다.지구에 다시 돌아온 원정대가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좀비와의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을 본다면,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를 들여다 보게 된다.인간 스스로 자연에 따라서 순리에 맞춰서 살아가지 못한다면,그 화는 분명 인간에 미칠 수 있다.비록 나의 오만한 행동이 나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들이 점층적으로 쌓이게 된다면,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을 목도할 수 있다.바로 이 소설에서 잿빛 지구를 만들어 버린 원흉 좀비들을 보더라도 말이다.소위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버린 존재,좀비는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숨어 있으며,인간의 또다른 악의 실체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