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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50년째 살고 있습니다만
이유진 지음 / 예미 / 2020년 7월
평점 :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한다고 아빠는 담배를 사러 가셨고 우린 어물쩍거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담배를 물고 계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나를 보시며 "상무 딸 아이가?' 하신다. 언니도 동생들도 있었는데 나한테 그러시니 반갑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16-)
어느날 막내가 왜 자기한테는 공부하라고 안 했냐고,공부를 시켰어야 하지 않았냐고 화장실에 앉아 볼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따졌다.막내 나이 40이 넘어서 일어난 일이다. 엄마는 지금도 약간 울컥하며 억울하다는 듯 감정을 잔뜩 실어 말씀하신다."내가 안 시킨 거냐,자기가 공부를 안 해놓고 지금에 와서 왜 그러냐"고,. (-63-)
2011년 나의 교통사고도 그때 일어났다.아빠의 주말농장에 엄마와 조카 태우고 가다가 중간에 사고가 났다.뒤에 타고 있던 엄마와 조카는 다친 곳 없이 말짱하셨고,나는 그날 하루의 기억을 잃었다.
집을 짓고 나니 농사지을 땅이 없다.1층의 작은 텃밭은 자동차 매연으로 자라지도 먹을 수도 없다. (-119-)
그러나 딸만 있는 우리 엄마 아빠에게 우리 할머니가 지성을 제대로 못 드려서 그렇다거나, 조카들이 다 딸이라고 아들 하나 더 낳으라거나, 실로 몇십년만에 고릿적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너무 놀라워서 웃음이 났다.옛날 할머니 댁에서 고모(아빠의 이종사촌)가 놀러오셨을 때, 그 옛날의 기억이 송환됐다.모든 친지들이 딸만ㅇ 있는 우리 아빠를 걱정했고,모든 딸들은 건넌방에 모였고,모든 아들들은 안방에 자리를 하였다.(-170-)
21세기 지금 세상이 달라졌다.건너방에 ㅉ딸이 모였고,안방에 아들이 모였던 그 시절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네 자매의 딸 중 둘째였던 저자는 자신의 삶의 희노애락을 언급하고 있었다.아버지는 후회하고 있었다.족보에 딸들을 올리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1970년갱 저자에게는 그것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1970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그 시대의 어른들이 보여준 모습들이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졌던 것이다. 저자는 이유진이 아닌, 상무네 딸이었다.상무는 아빠이름이었을 것이다.그리고 그 시골의 정서를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과거 맥가이버였던 아빠의 모습,딸도 아들 못지 않게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저자의 언니, 즉 첫째딸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네 딸 중에서 제일 먼저 시집간 막내 딸은 공부를 하지 않았던 과거를 부모님께 화풀이하게 된다.그러나 그 시대에 공부를 안하게 된 것도 그러하였고,부모 또한 공부의 중요성을 몰랐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시대가 만든 굴레에서,네 자매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막내는 두 딸을 가지면서,새로운 사회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지게 된다.어른들의 꼰대스러운 멘트를 웃으면서,넘기는 둘째 달과 달리,막내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오십이라는 나이,이제 부모님과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삶의 위안이 되는 부모의 역할,그 무게감이 느껴지며,인생의 무게도 느껴질 수 있었다.만남이 있으며,헤어짐이 있고,헤어지면 만남이 있다.인연이란 그런 것이다.나와 다른 너의 삶,너와 다른 나의 삶이 서로 교차되어지면서,가족의 소중한 가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말하고 있었다.그리고 저자는 족보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갈 2040년을 기다리게 된다.아빠의 눈물 속에는 딸의 소망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