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는 시간을 위하여 - 연엽산 비구니 시인 원임덕 시집
원임덕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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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는 시간을 위하여시간이 되면 떠나가네

세상의 모든 것들
뒤로 앉은 기차에서
선로를 바라보듯
손닿았던 것들 멀리 달아나네
사랑하면 
더 욱 사랑하면
흩어지지 않으리라
그 맹세도 
가을 잎처럼 흩어지네
고운 잎보다 가을이 먼저
찬서리로 말하듯이
오늘도 바람이
내가 모르는 시간을 말하네. (-24-)


새들은 강 건너에 가 본 적이 없다

어둠 속에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새들은
강 건너에 가 본 적이 없다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그들에게는 숲이 전부였고
키 큰나무 아래의 하늘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온통 푸르름이었다

그저, 날면 하늘이지만
둥지보다 너른 숲은
어둠도 군불을 지피듯 다가와
두려움이 사라진 삶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무장해제 되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은
날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았다
나무와 풀과 꽃들과 온갖 이끼들의 마음이
새의 날개가 되었다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새들은
한 번도 강 건나에 가 본 적이 없다. (-69-)


붉은 밤

간밤에 바람이 해풍처럼 일더니
시든 연잎처럼 떨어져 내린 번뇌의 이파리들
모두 바다로 데려간 듯
갈림길처럼 휘어지던 버드나무들은
시치미 뚝
버얼건 해 오르기를 눈 감아 기다리고
늘 오는 아침은 여전히 가지련하건만
지나간 심사다 파랑이 일어
내내 푸른 밤을 물들이려 했던 거지. (-105-)


방생

생명이란 무엇일까
살아 있는 목숨이란 말이다
숨길을 통해 들고나는 숨
당연한 것이 있어
모든 것들이 산다
숨이 있어 꿈틀거리고
그 꿈틀거림이 용을 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몇 마리
비린 맛을 알고부터
발톱의 날을 세우며
네어주는 멸치들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다
살아있는 것들이 하는 몸짓이다

사람도 밥을 먹고 산다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그리고 그것들에 의지하여 운집한다.

어쩌면 생명은
발견을 통해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다
물고기가 바다에서 살듯이
익숙한 것들을 붙잡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나무의 잔뿌리가 뻗어
새로운 순이 돋는 것은
언제나 돌아갈 곳을 준비하는 마음이다.

익숙한 것들은 안락이다
해 저녁 집으로 돌아가듯이
익숙한 것들은 고향이다
자식이 어버이를 찾듯이
그러나 집이 없는 사람들은 고향이 없다.
고향은 안식이며 반석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연다

시인은 마음의 고향으로 언제나 돌아가고 싳다

2
어버이는 언제나
문밖에서 기다리신다
무사히 잘 있음을 바라보시려
오늘도 기다리신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에
어버이 늙으신 손의 온기는
오늘도 이 새벽
도시의 어둠을 비추고 있다
감물에 놓여진 물고기 한 마리가 
퍼드덕 춤을 추듯이 
나도 세상의 바다에서! (-131-)


원심덕의 제2시집에는 인간이 있으며, 자연, 동물, 불교,무상함,생각이 있었다.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도구가 되어서,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왔다.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면서,인간은 공교롭게도 자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오묘한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면서,자기 자신을 이해하고,과거를 보면서,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동물은 그렇지 않다.온전히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으며, 눈앞에 죽음이 있더라도,그 죽음의 순간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온전히 걱정과 근심을 끌어난고 살아가는 인간과 차별화하고 있었다.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축복이다.그리고 그것은 불운이기도 하다.인간 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병력적인 증상은 그 과정속에서 잉태되어졌으며, 오로지 자살을 하는 동물이 인간의 자화상이었다.생명이면서, 자신을 이해하면서,또다른 생명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개념.인간은 농경사회를 거쳐 언어를 만들고,말을 쓰게 된다.그 과정에서 자연 속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개념화하였다.그건 처음부터 개념이 없었던 것이었다.인간만이 해낸 것이며,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운 것을 탐고하고,탐구하고, 탐구하는 것은 개념을 만들기 위한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다.그래서 인간은 동무과 달리 갇혀 있는 것을 싫어하게 되고,자유를 갈구하게 된다.개념이 인간을 강제하고,인간은 개념을 만들면서,공교롭게 거기에 갇혀 있다.자연은 그렇지 않았다.시르 읽으면서 인간과 자연을 요모한 진리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현재에 살아가면서,생명을 가지고 살아왔다.그 과정 속에서 갇혀 있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갇혀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축복이다. 걱정하지 않고,근심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고, 안전지대에 살아있음에 만족하기 이다.다만 동물은,자연은 그것을 개념화하지 않으면서,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인간이 욕망과 욕구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과 상반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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