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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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는 1891년 12월 조선을 떠나야만 했다.그는 육영공원 교사 연장 계약에서 조선 조정과 미국 공사관 모두에게 실망하였다며 조선을 떠난 이유를 부모에게 보낸 편지(1891년 12월 13일)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큰 원인은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미국 공사가 오히려 자신을 내팽개친데 대한 분노였다. (-61-)


헐버트는 한국 역사학에 대한 기여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역사상 최초로 단군 시대부터 조선시대를 포괄한 근대적 의미의 온전한 역사서를 출간한 사람이다. 근느 또 역사서에 한민족의 인종적 우수성과 불굴의 생존력을 투영하여 국제사회에 한민족의 진수를 알리고,우리에게는 긍지를 안겨주었다. (-206-)


서울에서 슬픈소식이 전해졌다.1910년 8월 29일 일본이 결국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것이다. 헐버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당일로 언론에 <대한제국의 소멸 The Extinction of korea>을 기고하여,"일본의 가면이 벗겨졌다.일본외교는 이중성이 전부다. 일본은 항상 처음에는 달콤한 말로 이웃 나라를 돕는다고 하고 종국에는 그 나라를 갉아먹는다. (-329-)


1949년 8월 2일 헐버트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다급하게 영부인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이승만은 개인적 관계를 떠나 국가 원수로서 헐버트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오후 3시 반 이승만이 병원에 도착하였다.이승만은 병상의 헐버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412-)


호머헝버트는 미국 버몬트 주에서 태어나 고종의 부름으로 조선에 오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글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그것이 헐버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조선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이 처한 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게 되었으며,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을 세계 곳곳에 알려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게 된다. 여긱서 이 책을 읽으면 헐버트의 다양한 삶과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1863년에 태어나 1949년 세상을 떠난 그는 조선상고사 이전에 조선의 역사를 직접 책을 쓰게 된다. 다반 그의 업적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조선에 자신의 혼을 묻고 싶었던 그 과정들이 치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업적은 조선 후기 ,조선이 처해진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한 정신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을사늑약으로 인해 조선이 합벽되는 그 순간 ,그는 대한제국 멸망사를 써서 국제에 조선이 처한 현실을 널리 알리게 된다. 소위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 뒤에는 고종 특사로 움직였던 호머 헐버트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한국사에 등장하는 조선인 세사람만 기억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헐버트의 역사 흔적이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고종이 각별히 아끼는 외국인 특사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라마로 알고 있었던 조선시대 외국인하면, 제중원 제1대 원장이었던 알렌이 있다.그의 업적 만큼 자신의 역할을 해왔는 이가 바로 호머 헐버트였으며, 그는 조선을 자신의 고국처럼 느끼면서, 조선이 처한 현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 생각하게 된다. 즉 우리가 그의 업적을 다시 조망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감춰진 역사, 숨어있는 업적,그것들이 가려진 현실을 우리 스스로 느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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