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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시
한산 지음, 신흥식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6월
평점 :
보살의 숨은 자취를 거지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홀로 한산에 살며 스스로 그 뜻을 즐기고 있었다.모습은 초췌하게 마르고 입은 옷은 남루하나 하는 말은 문장을 이루고 실로 지극한 이치를 깨쳤으니 보통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고 되레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다. 때로 천태산 국청사에 들어와 천천히 진 회랑을 걸으며 껄껄 웃다가 손뼉을 치고 흑 달리다, 혹은 서서 , 혼자 중얼거리곤 하였단다. 먹는 것은 부엌의 먹고 남은 밥이나 나물 찌꺼기이며 읊는 게는 슬프고 애달팠다. (-21-)
돼지는 죽은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은 죽은 돼지의 창자를 먹네
돼지는 송장 냄새를 꺼리지 않고
사람도 도리어 돼지가 구수하다 이르네.
돼지는 죽으면 물속에 던지는데
사람은 죽으면 흙을 파고 묻네.
사람과 돼지 서로 먹지 않으면
연꽃이 끓는 물에서 피어나리라. (-74-)
옛날에는 가난해도 가난 커니 했는데
오늘 아침 가장 가난하고 춥네
일을 해도 순조롭지 못하고
길에 나서면 바쁘기만 하네.
진흙길을 가면 거듭해서 다리를 삐고
잔칫집에 앉으면 자주 복통이 나네
얼룩 고양이마저 잃어버렸는데
늙은 쥐들이 밥그릇을 맴도네. (-141-)
보지 못했는가? 아침 이슬이
해 뜨면 절로 사라지는 것을
사람의 몸도 또한 니와 같거니
염부 여기 기대어 사는 것이네.
결코 적당하게 지내지 말게
우선 삼독을 떨쳐 첪애야 하네.
보리가 곧 번뇌이니
'번뇌'로 하여금 남겨두지 말아야 하네. (-173-)
내가 본 지혜로운 사람은
관(觀)하고 문득 뜻을 아네.
문자를 빌리지 않고
곧바로 여래지에 드네.,
마음은 여러 인연을 쫒지 않나니
의식이 망령되게 일어나지 않네
마음과 의식에서 '아무것도'생기지 않을 때
안팎으로 남은 일이 없네. (-249-)
아! 세상에 많이 아는 이를 보면
하루 종일 엉뚱한데 마음을 쓰네.
갈림길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모든 사람들을 속이네.
오직 지옥에 들어갈 구실을 만드는데.
내세의 인연은 닦지를 않네.
홀연히 네게 무상이 닥칠 것인데
틀림없이 어찌할 줄 모르리라. (-332-)
거문고와 책을 벗하며, 천태종의 본산 국청사에서 기거했던 한산자는 가난한 걸뱅이의 삶을 살게 된다. 고기 한 점 먹지 못하고, 주변에 산에서 자생하는 나물을 뜯어서 살아온 한산의 삶은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서 올바른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가난하였다.가난하였지만, 결코 비참한 삶은 아니었다.오로지 혼자의 삶을 살아왔으며, 근심걱정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있었다면, 한산의 삶도 무소유를 지향하게 된다. 번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면서,제물을 탐하지 않는 삶,그 삶이 번잡한 세속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가는 길이었다.
그가 남겨놓은 한시 한 수 한수 읽으면서, 한산이 지금 우리 시대로 온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넘쳐나고 더 넘쳐나서 쓰레기로 뒤덮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그럼에도 부족하다고 채우려 하게 된다. 지속적인 소비와 낭비,쓰레기를 남용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면서,혀를 끌끌 찿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빈궁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음식쓰레기를 주워 먹는다 하더라도, 아쉬울게 없는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극히 남을 의식하지 않았고, 이치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그에게는 사람과 얽히는 게 없었고,서로 얽매이는데 없었다. 자조적인 삶,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의식주에 있어서 ,보편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어쩌면 그가 세상을 냉철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지난하게 가난하였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배부른 삶을 살아가면, 탐욕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그렇게 되면, 세상의 이치를 구하는데,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갔고,그 안에서 남들과 타협하지 않았다.,고고하면서, 선비의 자태를 유지하면서, 삶의 철학 그 자체가 높고 높은 추운 산이었던 것이다.결코 따라할 순 없지만, 그의 삶이 마음이 아프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면서,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추구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면, 한산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