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 '천삼이' 간호사의 병동 일기
한경미 지음 / 북레시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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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모르핀을 맞은 채 날 찾아 6층을 방문했다.
"얼마 남지 않아서" 보고 싶어 왔다고 말하며, 
별 수 있겠냐는 듯 슬픈 눈으로 내 손을 한참 잡았다.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정리해야 하는 기분은 어떨까.

오늘은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냥 차라이 편하게 마감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그래도 조금만 더 살아보자.

온종일 할 일이라곤 없는 병원원에서 얼마나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까. 옆자리 침대가 비워지는 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뜬금없이 너무 슬프다. (-49-)


진정제 폭탄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사랑 그녀는 때를 밀러 가겠다며 뛰쳐나갔다.

환자 1은 맨바닥에서 대자로 자고 있고
환자 2는 이빨로 수액 튜브 물어뜯고
환자 3은 때 밀러 가겠다고 뛰어다니고

오늘 나이트도 푸짐했다. (-110-)


새벽녘에 감성이 올라오는 이유는
다른 이들은 눈 감고 생각도 잠재운 시간에 나 혼자
조용히 상상을 널뛸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익고

새벽녘에 우울감이 드는 이유는,
다른 이들은 눈 감고 생각을 멈추는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혼자 깨어 있는 걸까,
하는 외로움과 고립감 때문이 아닐까. (-183-)


"이번 항암이 15번째인데, 나는 인제 고마 죽어야겠다."

"에헤이 ,항암 14번 하고 15번째 하러 걸어서
들어온 거 보는 아직 죽을 날이 아인가 보지예
15번째 하고 또 걸어서 집에 갈 거니께 적~어도
올해에는 안 죽겠네요~"

할매가 깔깔 웃으면서 내 팔뚝을 퍽퍽 때렸다. (-187-)


젊은사람한테는,

동그랗고 노란 건 가려워서 먹는 거고
길고 파란 건 가래 삭이는 약이고
이거 빨간 약은 철분제예요.

할머니한테는,

똥그랗고 누~런 건 지그러블 때 묵는 약이고
쨀쭘하고 시퍼런 건 가래약이고
이거 씨뻘건 약은 피 맨들어주는 빈혈 약입니데이.

"아따 알아뭇다." (-213-)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퇴근할 때가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 이전에 일했던 병동을 들렀다.
간호사들이 저녁도 못 먹고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오랜만에 내 얼굴을 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짧게 대화를 나누고 병원을 나와서 룰루랄라
친구와 고기를 구어 먹는데 괜히 미안했다.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서이동을 하며 나온게
미안했고,저들은 온몸으로 액팅하는데 나는 앉아서
식곤증이나 느끼는 게 미안했고, 혼자 좋은 식당에서
비싼 고기를 먹는게 미안했다.

미안함을 느낀 나는 고기 5인분을 처먹었다. (-243-)


1990년생, 부산 출신의 9년 차 간호사 천삼이 한경미씨는 울산에서 교육간호사로 일하고 있다.일명 천사에 다다르지 못해서 천삼이라 부르고 있었고, 간호사로서 자신의 일상을 SNS로 쓰던 와중에 작가로 입문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 경계 속에서 모르핀을 환제에게 놓아주어야 하는 치열한 공간 병원에서 천삼이 한경미 간호사는 때로는 환자의 손녀가 되기도 하였고, 스스로 환자들의 쓰레받기가 되어서 환자의 모든 오물들과 감정들을 받아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힘든 병원 일선에서, 항상 임종과 목도하면서, 지냈던 한경미씨는 죽음이 예고된 그들에게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살아가면서, 사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을 십분 헤아릴 순 없지만, 그들과 소통하면서,그들의 희노애락 속에는 애잔함이 묻어내 있다.항암제를 투여하는 그들이 회복하도록 때로는 적적한 유머를 쓰면서, 무거움 마음을 감추고,가볍게 다다가는 그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살가운 간호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픈 환자에게 아픈 것을 잠시 잊도록 도와주는 것, 때로는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보면서,차마 외면하지 못했던 그녀의 다양한 삶이 느껴졌다. 기계가 돌아가고, 피가 수시로 오가는 공간 안에서 언제나 정으로서 사람다운 삶을 추구하였던 그녀의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소통법이 돋보였다. 진지함 속에 유쾌함,결코 천사가 될 수 없는 자신을 쿨하게 인정하는 저자의 모습 속에서 내 삶의 현주소는 어떤지,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반추하게 되었고, 만만한게 가족이라고, 환자들에게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서운함과 씁쓸함을 ,예고되지 않은 울적함과 우울감을 여행을 통해서 푸는 저자의 삶의 관조도 간간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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