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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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는 콩밭으로 들어갔다.아직 날이 저물기 전이어서 잘 여운 콩대를 몇 개 골라 꺽을 수 있었다.콩밭에 잡초가 너무 많았다.앉은뱅이는 꺽은 콩대를 가슴에 끼고 밭고랑 사이를 기었다.조용해서 잡초의 씨앗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는 들을 수 있었다.말이 콩밭이지 잡초밭이나 마찬가지였다.앉은뱅이는 황톳길을 나와 콩대를 빼었다. (-15-)


"우리는 난장이라구요!"
악을 쓰듯 신애가 말했다.
"우리가 왜 난장이란 말예요!" (-36-)


아버지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사람들은 이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아버지가 늙는 것을 몰랐다.아버지는 스스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체념과 우울에 빠졌다.실제로 이가 망가져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눈도 어두워지고 머리의 숱도 많이 빠졌다. (-95-)


나에겐 아무 죄가 없어,하고 경애가 말했다.여자아이들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윤호는 경애를 의자 위에 올려세우더니 손을 들게 했다.경앨의 몸은 끈에 묶여 매달린 셈이다. 자백할 때까지 매달아둘 테야, 하고 윤호가 말했다. 여자아이들이 소리를 내어 눗었다.윤호는 경애를 의자 위에 올려세우더니 손을 들게 했다.경애의 몸은 끈애 묶여 매달린 셈이다. 자백할 때까지 매달아둘 테야,하고 윤호가 말했다.아이들에게는 지루한 놀이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시 전축을 틀고 중단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경애가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로 윤호를 향해 쓰러졌다. 윤호는 경애를 안아 바닥에 눕혔다. (-173-)


은강은 너무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영희의 말대로 은강은 위험한 도시일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한 곳이었다.애꾸눈 노인네 껍질나무 벽에는 지명 피의자 죄악으로 가득찬 곳이었다.애꾸눈 노인네 껍질나무 벽에는 지명 피의자 수배 벽보가 붙어 있었다.살인, 살인미수, 강도 상해, 강간, 공무원 자격 사칭 ,특수 강도, 사기, 수회 등의 죄목이 피의자에게 걸려 있었다. 내가 아는 죄인들의 이름은 올라 있지 않았다. (-241-)


제군,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주었다.그런데 내가 담당한 수학 성적이 예년보다 떨어져 제군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예비고사에서의 수학 성적이 나빠진 책임이 수학 교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제도를 만든 당국자, 그 제도를 받아들인 교육자와 학부모, 네개의 답안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도록 사지선다형의 문제를 만든 출제자, 문제지 인쇄업자, 불량 수성 사인펜 제조업자, 수험 감독관, 키펀처, 슈퍼바이저, 프로그래머, 컴퓨터가 있는 방의 습도 조절 책임자, 판정자 역을 맡은 컴퓨터, 물론 나의 수업을 받은 제군 자신, 그리고 네군 앞에 서서 가르쳐야 될 나에게 늘 엉뚱한 주문을 한 짆락지도 주임과 그 위의 교감,교장 ,또 가르침을 주고받아야 할 제군과 나의 기분에 영향을 준 학교 구성원들의 계획, 실천, 음모 ,실패 등 책임 소재를 정확히 밝히자면 들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나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305-)


버락 오마바가 한 때 연설을 통해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한 적이 있었다.한국의 교육열을 배우라고 말이다. 한국의 교육과 교육열,그 근간에는 1970년 배고픈 삶과 핍박, 아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오바마가 알지 못한다.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교육열은 지금과 다르게 흙수저가 금수저로 편입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방편이었다. 1970년대 콩시루 같았던 교실, 지금 부모님들이 학교를 다녔을 때, 판잣집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그 시대의 표상이 그 교육열에 녹여져 있었다.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때의 상황이나 정서를 잘 모르고 성장해왔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 시절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과 부조리, 감추어여 할 것들을 철저히 숨기면서 지금껏 역사가 흘러왔었기 때문이다.그 시대의 상황들을 보면,지금 우리가 소위 말하는 귀족 노조들의 시작점이 어디에서 있는지 살펴 보게 되었다.그들이 노동에 자신의 생을 걸었던 이유는 생존에 있었다.사회의 불온 세력이라 불리었고,하루 아침에 피의자로 몰려 음지로 음지로 향하였던 그들의 마지막 종착역이 언제죽을 지 모르는 최후의 마지막 공순이 ,공돌이의 삶이었다.


책에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보다 100배 물가가 쌌던 그 시절의 모습들,만원 짜리 하나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였던 그 시절, 그들은 꼽사, 난장이,앉은뱅이라 부르면서, 핍박을 해왔었다. 살아가는 판자집조차도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서 도시 정비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철거반을 동원해 철거를 시작하였었다.지금의 소위 정치인들 중에 그 시절에 비주류였던 이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방직공장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그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소리 없이 죽어 나갔었다.난장이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삶을 다시 살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두들겨 맞아도 하소연할 수 없었고, 잡혀 들어가도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던 그 시절, 숨죽겨 사는 것이 그들의 소극적인 정항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과거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나 모래시계와 같은 드라마 속에 녹아들어가게 되었던 이유도 무관하지 않았고,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지금 이 책이 읽혀지지 않았었어야 했다. 이 책은 1970년대 정서를 반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금에도 유효하다. 다만 그 시절에는 난장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현존하였고, 기술이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조차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사회적으로 무가치하고, 쓰여지지 않는 존재, 그때처럼 억압하지 않고, 숨죽이면서 살아가지는 않지만, 그들은 도시나 농촌에서 있는 듯 없는 그러한 미물에 불과한 보여지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간혹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층에 난장이들이 나와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며, 나머지 90퍼센트의 난장이들은 자신의 존재감 조차 주장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미물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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