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한 번 깨달은 것 외에 다시 분별하지 않아서 더 이상 일삼아 하지 않는데 우리 유교는 일마다 하늘으 이치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교 또한 깨우침을 벗어나 이러한 분별이 있는 것은 아니니, 다만 이렇게 깨우친 곳이 곧 하늘은 위에 있고 짱은 아래에 있으며 (그 중간에) 만물이 흩어져 존재하는데서 비롯하였으니 조금도 옮겨 바꿔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늘이 차례로 행하는 것, 하늘의 질서,하늘의 명령, 하늘이 죄 없는 사람을 토벌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8-)


벌거벗은 어린 아이의 마음은 본디 교묘하게 꾸미는 것이 없지만, 다만 의리에 대해 지각할 수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아기의 마음일 뿐입니다.대인이라면 지각하여 확충하는 공부는 있지만 교묘히 꾸며서 알맞게 배치하는 천착이 없으므로 아기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잃지 않았다'늠 말에 착안한다면 (아기의 마음과 대인의 마음은 )서로 경지가 같지 않습니다. 남헌이 말한 것은 참으로 좋지만 반드시 처음부터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것은 매우 좁은 것입니다.이미 그것을 잃었다 하더라도 돌이킨다면 다시 이 경지에 이르게 되니, 또한 무엇이 잃지 않은 것에 대해 해가 되겠습니까? (-110)


"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이 믿음에 가깝다."는 것은 대게 배우는 사람이 평소에 마음이 성실하지 않으면 비록 낯빛을 바르게 하였을지라도 거짓됨을 면치 못하여, 예컨데 겉으로는 인을 취하면서도 행동은 어긋나는 것과 같습니다.그러므로 낯빛을 바르게 하여 믿음을 가까이 하는 것을 ㄷ귀하게 여겼으니, 역시 보내신 각주에서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262-)


맹자는 갑자기 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논하면서, 곧바로 이것을 가지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仁)이 아니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의가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예가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만 측은이라는 하나의 단서가 발현한 곳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머지 세 단서는 다시 일일이 집어서 들어내지 않았습니다만, 어떻게 생략한 것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315-)


횡거선생은 "의리에 의심이 들거든 옛 견해를 씨어 버리고 새로운 뜻을 맞이하라"는 말이 있습니다.가장 이치가 있는 말입니다.옛날의 견해가 이미 잘못되었는데도, 오늘 또 다시 예전의 생각을 가지고 이리 저리 나누고 쪼개는데 더 힘을 낭비하여도 경전의 올바른 의미는 점점 더 혼미해집니다.반드시 모든 옛날의 견해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 경전의 문구에 푹 잠겨 그 본문의 의미가 분명하여 조금도 착오가 없게 하고서 옛날 이해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면 ,그 시비와 득실이 아침이 되기도 전에 결정될 것입니다. (-432-)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며,인에 의지하고,예에서 노닌다"고 했습니다.제가 생각하기에, 모든 사물마다 이치가 있으니, 도에 뜻을 두면 생각이 함영하는 가운데 지극하게 됩니다. 뜻이라는 것은 이 이치를 추구하고,반드시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522-)


성내고 두려워하며,좋아하고 즐기면 근심하는 것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마음은 그 바름을 얻지 못하니, 왜 그렇습니까? 이 마음은 순간이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희노애구가 하나라도 마음에서 싹트면 마음을 속박하여 기를 통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가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성내야 할 때는 성낼 뿐입니다.이미 성냄이 주가 되었는데, 어떤 보존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두려움과 같은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여기에서, 성인은 학자가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조금도 단절되지 않게 하기를 바랐습니다.희노애구도 남아 있지 않은데, 넓은 바깥으로 내달리고 사악하고 편벽된 망념이 이 마음의 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이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마음을 단속할 수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체득하면 어떻습니까?희노애구가 있으면 네가지 드렁남은 그 바름을 얻지 못합니다.희노애구가 없으면 네가지 드러남이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651-)


주자대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치였다.하늘의 이치를 묻고 있으며,하늘의 이치에 따라간다면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그건 학문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경전 속의 글귀 하나 하나 토씨 하나 하나 깊이 살펴보고,거기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삶 속에 배여 있는 나쁜 습관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생각을 비우면, 내 안의 모든 감정들이 머물러 있지 안게 된다.비워지면 채워지게 되고,채워지면, 비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이 책에서 유달리 인을 강조하고 있었으며,인에 따라 스스로 살아간다면,바름과 옳음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고,스스로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도에 뜻을 두고,덕을 지키는 것, 우리가 학문에서 배워야 할 궁극적인 가치였다.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도와 덕을 강조해 왔었다.유교이념을 받들어 교과목에도 도와 덕을 실어놓았다.그러나 그것에 대해 명확하지 못한채 불분명한 상태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았다.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게 되면, 드디어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주희는 학문의 근본을 논아와 맹자, 대학과 중용에 가치를 두었으며, 이 네가지 경전을 통달할 때,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마련한다 하였었다.그건 지극히 맞는 이치였다.돌이켜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이 책에는 적시하고 있었다.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지는 것,순수한 마음 속에는 선이 깃들며, 주어진 삶에 만족할 수 있다.남의 것에 탐내지 않는 것,탐욕은 성냄의 씨앗이었으며, 삶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생각을 비워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하늘의 이치를 알고,사물과 사람의 이치를 구하기 위해 학문에 정진하여야 하며, 모든 것에 깊이 관찰할 수 있을 때, 스스로 그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이 책 속에 깃들어 있었다.사라졌고,잊어버렸던 것들,그 하나 하나가 새삼스럽게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인의예지신에서 딱 하나 인에 따라 살아간다면, 내 삶이 단순해지고,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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