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대전차의집보(주차집보) 朱子大全箚疑輯補(朱箚輯補) (전14권) . 주자
한국학자료원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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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주신 편지에서 '다른 생각에 이끌려 한결같은 뜻으로 학문을 강론하고 익히지 못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오직 명백한 의리에 흠뻣 젖어 함양함으로써 의리의 마음이 늘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이것이 곧 긴요하고 절실한 공부이니 ,오래 한다면 반드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인이란 하늘의 이치입니다.이치가 발생하는 곳에는 자연스러운 절도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자연스런 절도에 맞으면 자연스런 조화가 생기니, 이것이 예와 악이 나오는 유래입니다.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를 멸하게 된, 어찌 예와 악이 있겠습니까?(-52-)


이천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천지에서 정기를 모으고 오행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다.그 근본은 참되고 고요하다.그 근본이 발하지 않았을 때는 다섯 가지 성이 갖추어져 있으니, 그것은 인 의 예 지 신이다.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바깥의 사물이 그 형체에 닿아서 안을 움직인다. 그 안이 움직여서 일곱가지 정이 나오니,그것은 기쁨,성냄,슬픔, 즐거움, 아낌, 미워함,바람이다.감정이 이미 타올라 더욱 흔들리면 성이 끊아진다. (-151-)


보내온 편지에서 심성의 근본에 종사하여 기질을 변화시키는 공을 구하는 설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이 뜻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 이치는 애당초 안과 밖, 본원과 말단의 간극이 없습니다.무릇 일상생활에서 본원에 젖어 들어 일의 변화에 호응하여 대처하면서 강설하고 변론하여, 고찰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찾는데 이른다면, 한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에 있어서 마음을 보존하고 성을 기르며 기질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배우는 사람들의 병통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하는데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해 공부하는ㅁ데 있지 않습니다.그러므로 그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바깥으로 향한 것을 본다면 이는 모든 바깥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실제로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를 할 마음이 있다면 다만 이와 같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에서 규정을 엄격하게 세워 힘써 지켜나가 끊임없이 발전하여 퇴보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 곧 맹자의 '도로써 깊이 나간다는 것이 이런 의미입니다. (-326-)


수신과 제가는 진실로 마땅히 경계하고 성찰하여야 합니다.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염려에 이르러서는 우선 그대로 맡겨 두어야지, 절절하게 염두에 둘 필요는 없습니다.만약 이런 곳을 다시 놓아버리지 못한다면, 수행하는데에 힘이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이런 면에서는 당신보다도 더 큰 근심꺼리가 있습니다.그러나 또한 일에 따라 이리저리 대처할 뿐이요,눈을 감은 뒤로는 일체를 되는대로 맡겨둘 뿐 다시는 자기의 겨예 안에 들어있지 않도록 합니다. (-460-)


그리고 두 사람의 것을 한 곳에 써모아, 자세히 비교해서 그 옳고 그름을 고찰하여 통렬하게 분석하고 비판한다면 또한 귀결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한 쪽 만 보고서 서로 대조하여 참고할 줄을 모른 채 끝도 없이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고 붓 가는 대로 쓰느라 끝날 기약이 없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병이 깊어지고 게으름은 심해져 가슴속에 품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이처럼 간략하게 답장하니 자세히 헤아려 주면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더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만약 그르다고 생각되면,번거롭게 이 편지에 답장하지 마시고, 또 앞으로 다시는 질문하는 편지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604-)


마음에 주인이 있으면 마음이 텅 비게 됩니다.여기서 '텅 빈다'고 이른 것은 사악한 것이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주인이 없으면 가득 차게 되니, 여기서 '가득 찬다'고 이른 것은 밖으로부터 사물이 들어와서 마음을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동시에) 두갈래로 쓸 수가 없습니다.한 가지 일에 마음을 쓰면 다른 일은 다시는 들어올 수가 없으니 ,일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도 오히려 사려가 흩으려 질 염려는 없으니, 만약 경을 주로 한다면 또 어찌 이런 걱정이 있겠습니까? (-734-)


조선시대 국가의 이념에는 성리학이 있었다.그 성리학은 조선의 패망을 이끌었던  원흉이 되었고,그로 인해 우리는 성리학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다.그런데 성리학이 정녕 나쁘다고 본다면,그것이 국가의 이념이 될 수 있을까 재차 물어본다면,아니라 말할 수 있다.성리학을 쓴 이는 주희이며,주희는 공자와 맹자,그리고 여느 동양철학의 근본이 되는 성인들의 말씀을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독이 된다 하였던가,그 독이 바로 성리학의 근본이었다.도구를 잘 쓰지 못하고, 성리학 속에 담겨진 토씨에 집착하게 되면서, 성리학의 근본이 산으로 가게 된 것이다.즉 성리학을 이해하려면 ,주희가 쓴 주자대전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주희의 주자대전은 사실상 방대하다. 그의 저서가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읽어본 이가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을 살펴본다면, 성리학이 인이요,인이 성리학이라는 걸 알수 있다.사람의 근본은 인에 있으며, 삶속에 인이 뿌리깊게 내려올 때 ,비로서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될 수 있다.즉 이 책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것이 인이며, 수신과 재가를 통해서만 인이 완성될 수 있음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돌이켜 보면 성리학은 정치의 근간이었다. 왕도정치를 꿈꾸었던 그 시대의 군주와 왕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 책은 설명하고 있으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특히 강졸하였다.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나에게 지극히 엄격해야 하며, 나에게 엄격할 때 ,비로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즉 이 말은 나 자신을 다스리기가 지극히 힘들다는느 말과 동일시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정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지 않으며, 스스로를 바꿔 나갈 때,비로서 세상은 달라질 수 있었다.그리고 생각을 비워내야만 내 마음을 통재할 수 있고,비움과 채움이 반복될 때,그 사람은 스스로를 세울 수 있게 된다.사실상 이 책은 우리의 삶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있으며,부모를 섬기는 것이 인이요,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짐을 의라 말하고 있다.즉 인과 의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융합되어 질 때,한 사람의 인격은 완성될 수 있으며, 세상사람이 그 사람의 덕와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인정해 주게 되며,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더 나아가 세상의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스스로를 바꿔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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