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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카오 사스케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5월
평점 :
인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먹는 행위를 계속해 왔다.그 시간은 수 천년을 넘어 수만년 단위에 이른다.그 방대한 세월도안 인간의 활동과 노동의 주력은 언제나 식량획득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7-)
카레가 일본에 보급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였지만 성격이 비슷한 생강은 일찍이 역사 시대가 시작된 무렵 중국과 일본에 도래했다.온대 기후인 일본이나 중국의 생강은 품종적으로 매우 단조롭지만 인도나 말레이 부근에서는 다양한 품종 변화가 일어났다.생강 역시 야생종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재배 식물이지만 그 기원은 울금과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대에 탄생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1-)
앞서 이야기했듯 칡이나 고사리를 식용하려면 물에 담가 독성을 제거하는 기술의 완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이 지극히 간단한 가공법도 원시인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감자류를 으깨는 것은 돌로도 쉽게 할 수 있지만 녹말을 씻어 내거나 가라앉히려면 아무래도 큰 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또 물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가에 모여 사는 것이 편리하다. (-84-)
지중해성 기후란 겨울에는 비가 많이 와 춥지 않고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기후이다,맥류는 모두 이런 기후에 가장 적합한 성질을 지녔다.맥류는 가을에 발아해 습도가 충분한 겨울에 뿌리를 내리고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갈수록 빠르게 생장해 출수한다.이삭이 성숙할 무렵이면 덥고 건조한 보릿가을이 든다.성숙한 보리 이삭의 황금물결은 일본의 보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170-)
유럽의 신석기 시대, 철기 시대에는 소맥과 대맥을 모두 재배해 식량화했다.고대 이집트에서도 대맥과 엠머밀을 재배해 식용했다.그런데 오늘날 유럽에서는 소맥을 주로 먹고 대맥은 가축의 사료나 맥주, 위스키 등의 원료로 쓰인다.대맥은인간의 식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지역에서도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대맥 재배는 쇠퇴했다.동양의 경우, 중국 화북 지역의 광활한 농경지 대부분이 밀밭이며 대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4-)
인류의 문명 발생지들은 농경 문화와 엮여 있다. 잉카 문명도 그렇고, 황화 문명도 마찬가지이다.그건 농경 문화 이전의 수렵 채집 문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고,그 시대에는 농경문화흫 꽃피울 사회적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왜 인간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조건으로 불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다.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즉 인류가 불을 사용하고,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수렵 채집에서 벗어나 농경문화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그건 자연 그대로의 야생작물을 재배 작물로 바꾸기 위해서 인류의 조상이 먼저했던 것은 작물의 독성을 제거하고, 쓴 맛을 없애는 것이었다.찍고 빻고, 화전을 일구는 일련의 것들은 불을 다룰 줄 아는 것과 엮여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작물에서 낱알을 수집해왔던 인류는 스스로 종자를 개량하여,자급잦복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쌀,보리, 밀,옥수수와 같은 고유의 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열대작물의 대표종인 바나나를 따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더군다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해오기 위해서는 농기구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그건 고대에 원시 자연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그릇을 만들었으며, 반죽을 통해 토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물론 인류가 가죽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농경문화 속에서 필요한 고기와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이처럼 인류의 농경 문화의 과정들을 이해하고,작물의 원산지와 작물의 기원을 알게 되면,인류의 이동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빙하기가 끝난 직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들이 농경문화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게 된 원인, 더나아가 각 대륙에서 큰 강을 끼고 문명이 발생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결국에는 인류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었던 이유는 공동체가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끊임없이 침략해왔던 왜구의 모습은 섬나라가 가지고 있는 식량문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 속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