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한시 - 여행이 즐거워지는 역사 이야기
기태완 지음 / 다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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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유곡리는 매우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유곡은 우리말로 닭실이라 하는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고 합니다.마을은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앞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습니다.또한 마을 앞을 지나가는 냇물이 있어서 배산임수라고 할 수 있지요. (-61-)


우리 공은 평소에 깊은 충심을 품었는데
길흉이 아득히 한 번 번개 치는 어공에 있었네
지금 정자가 기암 위에 있는데
의구한 연꽃이 옛 연못에서 자라네
시야에 가득한 안개구름에서 평소의 즐거움을 회상하고
한 마당의 난과 옥에서 향기를 보네
추생이 몇 번이나 권하여 힘쓰게 함을 그르쳤던가
백발로 시 읊으니 뜻이 무궁하네

유곡의 선공이 집터 정함이 넓으니
운산이 돌고 물굽이가 들렀네
정자를 외딴 섬에 세워서 다리 걸쳐 들어가고
연꽃이 비추는 맑은 못에서 산 그림을 보네
농사일 스스로 능하니 배울 필요 없고
벼슬을 바라지 않으니 상관하지 않네
더욱 바위 굴에 왜송이 있음을 사랑하니
격렬한 풍상에 늙은 형세 서럽네. 
이황 <유곡 청암정에 부쳐서 적다>,<퇴계집> (-66-)


금성단은 순흥부의 북쪽 5리 내죽면 영귀봉 서쪽에 있다.금성대군 유가 안치된 장소이다. 경태 을해년에 단종이 왕위를 내어 놓았는데 병자년에 대군을 본부 (순흥부)에 안치했다.대군은 부사 이보흠 과 매번 서로 마주하고 슬피 울면서, 몰래 영남 지역의 선비들과 결의해 상왕을 복위시킬 계책을 꾸몄다.이때 단묘(단종)께서 영월로 쫒겨나셨다.그래서 장차 병사를 일으며 맞이하려고 했다.좌우를 물리치고 격문을 지었는데 "한 줌 흙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육 척의 외로운 몸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고,또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83-)


천년의 순흥부에 
한 조각 금성단이 있는데
자규는 어디서 우는가
근심 어린 옛능이 차갑네. (-84-)


백운동에서 밤에 묵고
제월교를 건너서
추운 날 고목을 찾아가려고
아침 햇살 속에 새벽 나무꾼을 쫒아가네
죽계의 근원 물줄기는 멀고
상전벽해의 세월은 아득하네
나그네가 지난 일을 물어보니
시골 노인이 이전 조정의 사건을 말해주네
압각수에 새싹이 돋아나서
용 비늘이 예전 불탄 둥치를 에워쌌네.
영고성쇠의 나랏일과
고을의 흥패가 동요로 불리네
물성이 어찌 이와 같은가
천심이 본래 스스로 밝기 때문이네
맑은 바람은 대낮에 불고
검은색이 푸른 하늘에 올랐네
밤비에 푸른 이끼가 돋고
봄바람에 초록 가지가 자라네 
금성대군이 천극 (위리안치)되었던 곳에
찬 그림자가 흔들림을 보네. 

권만 <금성단을 찾아갔다가 압각수를 방문했다.(강좌집)


봉화 닭실마을,그리고 순흥의 죽계제월교는 명소로 손꼽히고 있었다. 특히 닭실 마을은 봉화하면 청량산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곳이었다.정취가 좋고 배산임수 형인 닭실마을,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였던 곳, 그 마을 사람들의 정서를 들여다 보면, 시골 농부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사실 봉화 닭실마을은 어려서 부터 너무 많이 들어본 곳이라서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곳이었다.부모님께서 닭실 마음에 놀라 가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는 그곳,지금은 사람들 조차 띄엄 띄엄 보일 뿐, 인기척이 사라진 채 시골의 적적함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닭실마을은 경치가 남다른 곳으로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이며, 영남 지역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 순흥 금성단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내가 사는 곳 영주에는 실제 명소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특별한 문화재로 손꼽히는 부석사와 순흥 소수서원이 있었다.조선 단종 복위 운동 이전에 순흥은 선비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지역의 운명은 어느 순간 풍전등화처럼 변하였다.단종 복위 운동을 벌였던 금성군,그로 인해 순흥에 피바람이 불었고, 그 증거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은행나무와 죽계제월교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인간의 삶과 죽음, 그 역사적 소용돌이를 우리는 기억할 수 없고, 현존하는 사람들도 없었다.다만 고고한 자연은 그것을 기억할 따름이었다.나무와 풀과 돌과 잎새에 , 즉음과 삶, 생멸의 순간에 그들이 선택했던 것들, 잃어버리고 놓치고,사라졌던 그 흔적들이 한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비록 한자로 쓰여져 있지만, 그 때의 정서는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역사적인 절망감,그 안에서 악착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였지만, 그 결과물은 실패로 끝나버렸다.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 속에서 과거의 역사적 과오들을 훑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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