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지혜
이문영 엮음 / 정민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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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때, 팔도를 휘젖고 다닌 뛰어난 시인이 있었다.그의 이름은 김병연으로 ,자는 성심 이고 호는 난고이다.속칭 김립이라고 불리는데,그가 바로 김삿갓이다.흔히 그를 일컬어 '방랑시인'이라고 한다.전국을 떠돌며 즉흥시로 세상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5-)


시시비비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시비일세. (-31-)


첫째,유랑하면서 김병연이라는 이름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김삿갓으로서만 행세한다.어떠한 경우에도 신분을 밝히지 말고, 끝까지 유랑객으로서 행세한다.
둘째,누구에게 무슨 일을 당해도 절대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그것은 남에게 원한을 살 빌미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또한 누구에게 어떤 수모를 당해도 그저 웃으며 지나가야 한다.
셋째.물욕을 떨쳐버린다.돈과 명예 따위는 이미 내게서 멀어진 것들이니 훌훌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순수하게 행동한다.
넷째,정에 흔들리지 않는다.정에 빠지면 유랑을 할 수 없다.오는 정 막지말되, 가는정은 붙잡지 않는다.
다섯째,언제나 선의 편에 서서 말하고 행동한다. (-52-)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
채찍 거두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넷물 소리 귀에 울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하인은 해가 지고 있다 말하네.(-113-)


김삿갓은 나이 스물에 영월 고을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을 따냈다.그때 장원의 영광을 안겨준 시가 바로 자신의 조부를 욕한 내용이었다.
물론 백일장에 참가했을 때는 시제로 나온 역적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장원이 되고 나서 어머니로부터 본가의 내력을 듣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렇게 김삿갓은 역적의 자손이라는 죄책감을 움켜쥔 채 방랑길로 자신을 내던졌다. (-224-)


스무나루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밥을 먹네.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밥을 먹으리라. (_247-)


영주시 부석면 고치재를 넘어가면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로 지나가는 도로가 있으며, 그곳에는 김삿갓 계곡이 있다었다.조선 후기 삿갓을 쓰고 방랑을 하였던 김삿갓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이유로 평생 떠돌이 걸뱅이 삶을 살았던 김삿갓은 시를 지어 세상을 노래하게 된다.지금으로 보자면 김병연은 시인이요, 컨설턴트였다.세상 사람들의 굴욕적인 말에 치밀하게 굴욕으로 응징하였고.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무지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불복종 비폭력 운동을 김삿갓은 해왔던 것이다.영월 관아에서 할아버지를 탄하는 글을 썻던 김삿갓의 행위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삶에 있어서 욕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자신을 지키면서, 남을 예우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시시비비에 휩쓸려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대인의 피곤한 삶의 대안으로 김삿갓의 삶을 꼽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모르쇠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면서,사람을 대하는 그만의 처세였다.


김삿갓은 걸뱅이가 되었다.엽전 하나 허투루 남기지 않았고, 소유하지 않는 삶을 남기게 된다.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남겨 놓은 시는 우리에게 김삿갓처럼 살아볼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때로는 비겁하지만, 용기내어서 살아가는 것, 때로눈 어리숙하게, 때로는 비참하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시를 써 주고 밥을 평생 얻어먹으면서 살아가는 것, 걸뱅이라도 좋았던 그의 삶이,자본주의 사회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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