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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이근후 지음 / 메이븐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로 여든다섯 살이 되었다.이제는 누가 봐도 명실상부한 할아버지다. 등은 구부정하고 걸음은 느리고 머리카락은 희다.
4년 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 디뎌 머리를 크게 다쳤다.그때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다행히 뇌에 손상없이 외상에 그쳐 한 달간의 입원으로 치료는 일단락되었다. (-6-)
젊었을 때는 의지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전부 이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살아 보니 알겠다.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사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7-)
하지만 아쩌겠는가.돌이켜보면 나 역시 아버지가 하는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고 ,제대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도 없다.아버지는 6.25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2년에 49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전쟁 전에 국수 공장을 운영하며 꽤 넉넉하게 살았던 우리 집은 전쟁이 터지고 나서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53-)
즉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그저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일만 피해도,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자기 린생을 사는데 열중해도,부모로서 역할을 괜찮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63-)
할아버지라 부르면 싫고,나이든 거 몰라주면 노엽다. (-87-)
운명이란 게, 탓하자면 끝이 없어서 화풀이 대상으로 이만한 게 없다.가끔 지치고 힘들 때 운명을 대상으로 화 한번 크게 내고,털어내고,다시 출발하면 좋겠다.그렇게 다시 운명과 친구가 되면 좋겠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삶인데 이도 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살수는 없지 않은가. 끝까지 가 보지 못한 삶이야말로 죽을 때 가장 큰 후회를 부른다. (-109-)
남을 용서하면 반푼어치 용서다.내가 나를 용서해야 명실상부한 용서다.온전한 용서란 곧 자유로움이다. 내가 나를 속박했던 우너한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나는 것,톨스토이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
때가 되면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을 이제는 용서해 보겠다고 마음먹어 볼 일이다.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그러므로 용서란 나이가 들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하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199-)
어떤 위로가 그에게 합당할까.사실 나이가 들면 잃는 게 참 많다.우선 몸이 옛날 같지 않다.늙는다는 것 자체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학자도 많다.몸이 온전하지 못해 힘이 들고, 정신도 분별력을 점차 잃어간다.그러니 나이들어 좋은 일이 얼마나 있을까.이런 악조건 속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축복이라 할 만하다. (-238-)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김형석의 <백년을 살아보니>가 생각이 났다.백세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그것도 크게 아프지 않고 말이다.안타깝게도 내 곁에는 백세를 넘긴 분들이 거의 없었다.가난한 삶을 살아가면서, 찌든 노동을 몸으로 느껴왔던 그들의 삶은 고되고 또 고된 삶 그 자체였다.돌이켜 보자면 백세를 산다는 것은 그 자체의 시간만큼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그건 그들은 남들의 고민과 걱정들을 세월아라는 봇짐을 안고 지나왔기 때문이다.그 무게가 어떠하든, 어떤 삶을 살아오든 간에 그들의 삶의 흔적은 많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자 이근후씨는 이제 여든 다섯이다. 아내 이동원 교수도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이며, 두 사람 모두 이화여대 명예교수직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그들의 삶의 흔적을 본다면, 85세 노부부의 삶 그 자체가 남들의 표본이 될 수 있으며,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자기성찰의 흔적들을 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강조한다.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이다.하나의 빌라 건물에 다섯 가족이 모여 가는 그들의 삶은 빌라안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그건 서로의 독립적인 삶을 인정하면서,각자를 존중하면서,과거 우리가 살아왔던 대가족의 삶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었다.3대가 같이 살아가게 되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고,경험이 대를 이어 또다른 경험의 씨앗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예년만큼 못하다고 말한다.그건 그들의 생각과 인생 속에 욕심이 들어서이다.도전하지 않는 삶,현재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정신과 의사이자 대학교수인 이근후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채워 나가게 된다.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가 될 수 있다.주어진 것이 용서 뿐이라면, 살아생전에 용서를 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타인을 용서하고,나를 먼저 용서하는 것,그러는 과정 속에 미움이 덜어진다. 그 과정들이 결국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가치있는 삶,의미있는 백세를 살아갈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이제 저자에게 100세는 앞으로 15년 후의 삶이다. 그 남은 여생을 온전히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속된 시간의 과정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한 삶의 방정식이다. 그리고 그 삶을 누군가에게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삶의 의지와 기록,인생의 조건들을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에세이 같으면서,자기계발서 같은 인문학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