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 14년 차 방송작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김선영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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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심종자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서이 농후하다.달라진 게 있다면,굉장히 겁 많고 소심했던 관심종자가 겁 대가리를 상실한 관심종자로 진화했다는 것, 얼마나 관심이 고팠으면,사람 상대하는 일이 주 업무인 방송작가를 겁 많고 소심한 성격으로 꾸역꾸역 십삼년이나 했다. (-15-)


하지만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아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그만둔다고 말하는게 ,다같이 힘든 때에 혼자 발을 빼는 배신자처럼 느껴졌다.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인수인계며 새 작가를 적응시켜야 하니 할 일을 더 얹어 주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꽤 오래도 참았던 것 같다.그 사이 상태는 더 심각해졌고,매일 아침 울먹거리며 출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오늘은 꼭 그만둔다고 말해야지'결심했다가도, 일하다 보면 깜박 잊어버리거나 메인작가가 이미 퇴근해 버리기 일쑤였다. (-51-)


어쩌겠는가,협찬사는 자신들의 제품이 삼십여 초 방송에 노출되는 대가로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방송국에 지불했을 것이고, 그 중 일원도 제작진에게 떨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까라면 까야 하는 일개미인걸. (-77-)


나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출근했다.현미처럼 방송이 코앞인데 아이템을 잡지 못했거나 출연자 섭외를 못했을 땐, 다리가 무너져 버렸으면 했다.내 의지로 멈추지 못하는 시간을 불가항력이 막아줬으면 했던 것이다.
사고로 다리나 팔 하나가 부러지면 출근을 안 해도 되고,'충격!서강대교 붕괴'라는 삿건사고 방송 거리도 생기니 일석이조 웃지 못할 농담을 했다.끔찍한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우리는 인간미를 잃어갔다.참담한 심정이었다. (-124-)


다시 프리랜서 작가로 돌아온 나는, 나의 불안이 툭 하면 엎어지는 방송 일에서 비롯했다는 걸 깨닫고 체념했다.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한다 한들, 생각지도 못한 변수 때문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여전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19'로 나의 글쓰기 강의가 최소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붙들고 불아해 할지언정 괴로워하지는 말자.매사에 어그러지는게 계획이고, 세상사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 더 현명할지도,그저 앞에 놓인 지금 할 일을 하자.(-173-)


"뭐라는 거야,영상 멈춰 봐!"

내가 한 줄 한 줄 밤새워 공들여 쓴 내레이션을 지적했다.단 한 문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맞는 말도 있었고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맞는 말은 내가 부족해서일 테고, 억지는 새로 온 메인 작가에게 기선 제압을 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나는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왼쪽에는 날 믿고 메인작가로 영입한 팀장이 ,오른쪽에는 입사한 지 두 달 된 조연출이 앉아 있었다. (-211-)


"잠 좀 재워라~ 제발 피디 퇴근 좀 시켜라,지독한 방송쟁이들아!"

나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남편은 또 오버한다며 내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방송쟁이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방송 한 편이 텔레비전 밖으로 나오려면 수많은 사람이 내장을 쥐어짜는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243-)


방송작가 13년차 김선영 구성작가는 자신의 일을 소소하게 꺼내고 있었다.2007년 mbc 휴먼다큐 동행 이후 ,지금까지 13년동안 버텨오면서,느꼈던 소회를 읽어 본다면, 그녀의 희노애락을 엿볼 수 있었으며, 오죽하면 여의도 앞 서강대교가 무너지길 농담처럼 할까 싶은 마음도 엿보였다.


사직서를 움켜쥐고 출근하는 사람들,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막내작가, 서브 작가,메인작가가 되지만 현실은 열악함 그 자체였다.시간에 쪼들리고, 마감에 치여 사는 것,열심히 일하면서, 보람조차 느끼지 못할 때 생겨나는 처절함은 그 누구도 헤아리기 힘든 현실이었다.특히 진상 cp와 마주할 때 느꼈을 자괴감,선택과 결정에 대한 처절한 후회는 결국 저자의 몫 그 자체였다.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길들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면,우리는 그 과정속에서 저자의 삶을 가벼이 보지 못하게 된다.


힘든 삶이었다.멀리서 불구경하면서 보기에는 저자의 삶으니 최저임금에 치여 사는 삶 그자체였다.고통 속에서 직업병을 몸에 달고 살며, 방송에서 정확한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는 건 ,야근을 밥먹듯 한다는 것일거다.하나의 장면, 한 사람을 섭외하기 위해서 기울였던 그 시간들이 느껴졌으며, 자신의 노력과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밟힐 때의 심정은 모든 걸 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그러한 저자의 인생이야기,책의 맨 앞에 나오는 관종이라는 말은 말 속의 뼈쳐럼 느껴졌다.누군가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고, 피디와 작가 사이의 줄다리기는 쉽지 않았다.그러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쓰여진 책,김선영의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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