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 시인의 사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정현종 지음 / 문학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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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 

나무 옆에다 느낌표 하나 심어놓고
꽃 옆에다 느낌표하나 피워놓고
새소리 갈피에 느낌표 구르게 하고
여자 옆에 느낌표하나 벗겨놓고

슬픔 옆에는 느낌표 하나 올려놓고
가쁨 옆에는 느낌표 하나 웃겨놓고
나는 거꾸로 된 느낌표 꼴로
휘적휘적 또 걸어가야지.'(-33-)


자기 기만

자기기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기기만은 얼마나 착한가
자기기만은 얼마나 참된가
자기기만은 얼마나 영원한가
참으로 아름답고
착하고
영원한
자기기만이여
불가피한 인생이여.(-49-)

자(尺)

새는 날아다니는 자요
나무는 서 있는 자이며
물고기는 헤엄치는 자이다.
세상 만물 중에 실로
자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벌레는 기어다니는 자요
짐승은 탈난자이며
물은 흐르는 자이다
스스로 자인 줄 모르니
참 좋은 자요
스스론 잴 줄을 모르니
더 없는 자이다.
인공(人工)은 자가 될 수 없다. (모두들 人工을 자로 쓰며 깜냥에 잰다는 것이다.)
자연만이 자이다.
사람이여,그대가 만일 자연이거든
사람의 일을 재라. (-63-)


구름

지리산 근처의
구름 보셨어요?
(그 아래 질주하는 자동차도 보셨지요? 경주가 안 되지 않아요?)
하여간 그 아래서 나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면서
큰 산들에 둘러싸여 행복하여
버스는 오든지 말든지
그냥 거기 공기로 섞여 어정거리며,
여러 해 전 새재 골짜기에서
구워먹은 구름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 골짜기에서
돌 위에 고기를 구우면서
내가 창자를 다해 구워먹은 건 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구름이었습니다.(-93-)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123-)


한 편의 시를 한하 하나 살펴본다.초롯색 그림 속 오묘한 사진 스케치, 그 스케치 속에 시인 정현종 님의 시상을 엿볼 수 있었다.시집 <비스듬히>를 보면서,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생각하게 되었다.그 사진 속에는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그런데 그 의자는 평범한 의자는 아니었다.중간이 밑으로 꺼져 있는 듯한 기울어진 의자였다.온전히 홀로는 앉을 수 없는 의자,서로가 서로의 등을 기대어 앉을 때 ,그 의자의 가치는 다시 한번 재현될 수 있었다.돌아보면 우리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나약한 존재 인간이 서로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힘이 쎈 거대한 야생동물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기대는 인간의 본성은 어느덧 흐려지면서, 인간의 잔인함과 이중성이 나타나게 된다.이 시에서 느꼈던 하나의 문장 '자기 기만'이 나에게 확 들이 밀었고, 나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나 자신이 스스로 나체인 것마냥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움과 마주하게 된다. 자기기만은 인간 스스로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비겁한 인생,비겁한 삶을 살아가면,몸이 편하고, 삶이 편하였다.그러나 인간은 참 묘한 존재이다.잔인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도,어느새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도와주려운 연민의 시선도 나타나고 있었다.세상은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사회로 구현하였고,그과정에서 자연과 멀어지게 된다.'멀어지면서,인간 사회는 점점더 도드라져 보이게 되었고,인간 스스로 인공 자연에 도취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 속 철분과 칼슘은 분리되었고,뼈와 피는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그래서 우리는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그러나 정현종 시인의 시에는 그러한 인간의 오만함에 뜨거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따가움을 넘어서서,혐오스러운 성찰,그것이 이 시집을 꺼내서 읽는 이유였다.시집은 그렇게 내 마음을 적셔 놓았으며,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상기시켜 주었다.책 속의 서재들이 자꾸만 나의 눈에 밟혔던 것은 저자의 시상의 근원에는 저자의 서재 속에 일부분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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