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건너뛰기
이주호 지음 / 브릭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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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그런데 잠깐,신의 무덤이라고? 예수는 중동에서 죽었다.,부처는 인도에서 죽었다.순례는 이들의 매장과 함께 탄생했다.그렇다.신의 무덤이다.이곳으로 향해야 순례의 순정 여정을 밟는다.아무 의미 없는 장소에서의 표류는 순례가 아니라 했다.혹여 예수나 석가가 아니라도,순례는 거룩한 죽음을 찾아가는 행로여야 한다. 그런데 무덤 속에 있는 신에게 죽은 뒤는 고사하고 삶의 무엇을 빌 수 있다는 걸까.바라거나 빌지는 않는다.차차,그러면  꼭 '신의 무덤'씩이나 찾아갈 필요까지 있을까? (-14-)


내가 예수 무덤이나 부처의 사리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이유는 예수, 부처의 인생이 위대해서가 아니다.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반열에 오른 인간상을 완전히 그려내기 위해 수 세기에 걸쳐 수정과 편집을 거듭한 성전,경전 편집자들의 결과물에 미혹되서다.수 세기에 걸친 수정과 편집 끝에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졌고,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믿고 살아갈 사람들에 달린 문제다.믿고 따라가든,의심하고 검증하며 따라가든 경전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는 게 종교인들에게 남겨진 오직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42-)


허균이 안 썼을 수도 있는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벌이는 재주 대부분은 도가 수행자즐의 술체서 생쌀을 씹으며 일주일을 안 ㅈ바고 수련하며 익혔다는 <남궁선생전>의 주인공 남궁두라든가,비와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타고 둔갑술을 펼치거나 알약으로 왕이나 아버지를 살리는 홍길동의 활약은 도교 경전과 신선설화에서 가져다 쓴 소재들이다.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도교와 신선과 도술에 관한 수많은 레퍼런스들이 있어야 한다.(-115-)


김대건 신부는 머리가 잘려 나간 그 자리에 묻혔다.시신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군사들이 지켰다. 40일 뒤, 이민식이라는 17세 소년이 감시가 허술한 틈을 노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했다.그는 자신의 선산이 있는 안성 미리내까지 7일을 걸었다.신부를 안장 한 뒤 그는 그곳에 머물며 묘소를 지켰다.7년 뒤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 서품을 내려준 페레올 주교가 사망했다.그는 제자 김대건 옆에 묻어 달라 했다.(-165-)


책 제목이 독특하다.주제는 무덤이고, 소재는 죽음읻자.'장르는 에세이지만 ,에세이는 아니다.인문학이면서,인문학도 아니었다.여행 소개 책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그냥 작가의 생각과 의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 구현,욕구와 욕망을 여행과 에세이라는 매개체로 하여 ,자신의 의도를 드러애고 싶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만들었고,한권의 책을 만들어 내었다.작가이면서,편집자로서, 무덤, 죽음은 사람들의 이목과 호기심을 끌이기에 충분한 요소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은 잘 활용하면,돈을 벌 수 있고,사회적인 성공을 꾀할 수 있다.특히 예수나 부처의 죽음,무하마드의 죽음에 대해서 상기하면서,저자는 어떤 생각을하고 싶었던가 상상하게 되고, 저자의 생각과 나의 ,나의 생각을 중첩 시켜 놓는다.


덧칠하고 덧칠하면서,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저자는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모순과 위선을 일치시키고 있다.절대적인 가치인 종교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나가고 있으며, 짚어나가고 있다.자각하지 않는 것, 의식하지 않은 맹목적인 시선을 가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그리고 저자는 예수그리스도와 부처의 죽음,그리고 그들을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을 고찰하게 된다. 깨달음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성인의 죽음 가까이에 다가간다면,의식하지 않아도 의식하게 되고, 고찰하지 않아도 고찰할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저자는 죽음을 언급하고 있었고,무덤을 언급하게 되었다.절대적인 순교자로서 김대건 신부의 목잘린 그 모습은 때로는 혐오스럽지만, 거기에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그 혐오감은 반감될 수 있고,여기에 어떤 스토리를 덧쒸우느냐에 따라서,그의 업적은 더욱 더 부각될 수 있다.어떤 위대한 인물들의 삶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스승 밑에 항상 제자를 두는 이유는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예수 그리스도, 싯다르타,공자의 밑에는 수많은 제자가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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