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대성이라는 것은 "금으로 소리를 퍼뜨리고,옥으로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금으로 소리를 퍼뜨리는 것은 조리를 시작함이요,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를 끝냄이니,조리를 시작함이요,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를 끝냄이니,조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지의 일이요,조리를 끝내는 것은 성의 일이다. (-75-)


"배우고 또 익힌다"는 이 구절은 '논어'의 첫 번째 구절입니다.구절 중에 다섯 글자는 허하고 실하고,가볍고 무거운 차이가 있지만 글자마다 모두 의미가 있으니 한 글자라도 없애면 안 됩니다.읽는 사람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되고 ,말하는 사람은 또 간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배운다'는 것은 본받는 것이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아는 사람을 본받아서 알기를 구하고,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을 본받아 할 수 있기를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이'는 위 구절을 받아 아래로 이어주는 말입니다.'시'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때가 없는 것입니다.'습'이라는 것은 거듭 익히는 것입니다.'지'라는 것은 알게 된 이치할 수 있게 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사람이 이미 배웠으면 또 때때로 알게 된 이치와 할 수 있게 된 일을 익혀야 합니다.대개 사람으로 배우지 않으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치를 알 수 없고,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할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배우되 익히지 않으면 비록 그 이치를 알고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매끄럽지 못하여 스스로 안심할 수 없게 됩니다.익히되 때때로 하지 않으면 비록 익힌다고 하더라고 그 공부에 간격이 있어, 한결같지 않으니 끝내 익힌 공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성인이 비록 간략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많은 의미는 깊고 엄밀하여 이와 같이 끝이 없습니다. (-93-)


이천선생은 "사람이란 반드시 인의의 마음이 있고 난 후에야 인의의 기가 맑게 밖으로 드러난다.따라서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옳다"고 했습니다.또 말하기를 "고자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의가 내심에 있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고 하였는데 모두 이런 뜻입니다. (-207-)


사물의 마땅함에 처하는 것을 의라고 하고,처하여 그 지위를 얻는 것을 정이라 한다고 보면,이것은 모두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순간을 말한 것입니다. (-301-)


유학과 불교의 변별은 참으로 일깨워주신 대로입니다.정말로 극론해서 명맥하게 구별해야 할 곳은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다면,이것은 곧 몰래 북돋아 도우려는 뜻이어서 사람들의 의심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알지 못하는 자들은 마침내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니 작은 병폐가 아닙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오늘이후로는 이런 점에 유의하십시오.어찌 물러나면서 도를 떠맡은 책임을 남에게 의탁하고서 그들의 쇠퇴함을 다행이라 하며 은밀한 부분을 지키는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429-)


과거의 융성했던 시절에 풍속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한 대로입니다.그러나 당시의 선비들이 했던 학문이라는 것은 장구와 문장의 의미나 따지는 것에 불과했고,또 비루하고 잡다한 폐단이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당시의 선각자격인 선비들은 가끔씩 선왕의 위대한 가르침을 밝히기에 충분히 못하다는 병폐를 지적하면서 어떻게 이런 풍조를 혁신할 것인지 논의했습니다. (-527-)


다만 비난,칭찬이란 두 글자를 자세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칭찬'은 훌륭한 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일컫는 것이요,'비난'은 나쁜 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나무라는 것입니다.'시험'이란  또한 그것이 장차 그럴 것이라는 징험이 있긴 하지만 이미 그렇다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624-)


배우는 자들이 뜻을 두어야 하는 곳은 참으로 커야 합니다.일을 논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자기가 처한 입장과 논하는 일,말하는 사람 등을 살펴서 얕고 깊은 정도를 정하여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그리되면 말을 잘못하거나 사람을 잃을 염려도 없고,벼슬에 나아가 직무를 게을리 한다는 견책을 받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이미 스스로를 믿을 수도 없고 또 남에게 미더움도 사지 못한다면 차라리 물러나 자구책을 마련할 뿐입니다. 말을 하면 배운 것을 저버리고,응용하면 맑돠 부합되지 않는 것 등은 모두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673-)


주희가 쓴 주자대전 7권은 본격적으로 논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배우는 것을 강조하였던 논어는 지극히 인을 강조하였고, 배움을 중요시하였다.'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에 대한 깊은 의미가 주자대전 7권에 기록되어 있었다.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논어는 지식 습득에 마물러 있으면서, 왜곡된 오류의 결과였다. '배우면,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의심이 가는 것은 꼭 물어서 합리적인 방향과 답을 도출할 때 까지 끊임없이 답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말을 가벼히 하고,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모습,그것을 공자는 경계하였고,성리학의 근원이자 뿌리였다.즉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배움은 분별을 위한 배움이었고, 지혜로움을 요구하고 있다.사람을 대할 때 미리 판단하지 않고, 성급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여야 한다는 의미였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등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즉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나와 다른 생각을 거진 이가 지적이나 비판을 가할 때,나를 버리고, 수렴한다면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고,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즉 이 책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으며,성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칙을 말하고 있다.즉 논어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신에는 배움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으며,허투루 버릴 것이 없었다.사람을 대할 때 신뢰를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나를 낮춘다는 것이며, 나의 의견과 나의 생각을 버리고, 나의 고집이나 아집을 버리는 것이며,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그리고 수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경청하며, 그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이었다. 현대인들이 지극히 하지 못하는 것들이 인의예지신에 모두 담겨져 있었으며,우리가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또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자주 말하고 있는 '집대성'의 본 뜻을 할하고 있어서 눈에 들어왔다.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오묘한 진리를 내포하는 그 단어를 우리는 너무 많이 남용하고 있었었다.적재적소에 말을 쓰고,어휘를 절제하면서,써야 하는 이유는 나의 허물을 줄여나가기 위해서였다.즉 성리학의 근본이 되는 공자의 사상 논어와 대학 중용은 깊은 인생의 이치를 담고 있으며,이치에 맞지 않을 때, 나 스스로 멈출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이치에 맞지 않음에도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이유는 그 안에 나의 이익과 욕심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럴 경우 나에게 화를 부르는 무언가가 나타나면, 그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기 바쁘다.즉 나의 허물은 나에게서 시작되며,나에게서 끝맺음을 하게 된다.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그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있고,큰 일에 쓰여질 수 있다. 주자대전 7권을 눈으로 읽어서는 결코 안되는 이유이며, 이치를 구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며, 만물의 변화를 눈여겨 보면서,몸으로 익히고,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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