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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로 이름쓰기
김소향 지음 / 매직하우스 / 2020년 4월
평점 :
시무룩한 눈
고백하건데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
대상을 보는 시력은 있으나
현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은 없다.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할 수는 있으나
그 인연이 맺어진 이유는 볼 수 없다.
상대 얼굴을 보고 나이를 가늠할 수는 있으나
세월 속 경험으로부터 온 내공은 볼 수 없다.
사물의 용도를 식별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탄생시킨 숱한 노고는 볼 수 없다
펼쳐진 산과 강의 풍경에 감탄할 수는 있으나
그 속에 연결된 자연의 섭리는 볼 수 없다.
일출과 일몰의 경관을 만끽할 수는 있으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은 볼 수 없다.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감탄할 수는 있으나
인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볼 수 없다.
하늘, 별,달, 구름을 바라볼 수는 있으나
온 만물을 다스리는 산은 볼 수 없다.
고백하건데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17-)
가까운 듯 먼 속눈썾ㅂ
속눈썹은 뽑으면 안 되는 존재다.
눈시울에 난 속눈썹이 사라지면
눈물이 메말라 눈은 건조해질 것이다.
눈은 망막에 맺힌 장면을 응시하고
속눈썹은 그 장면의 맥락을 이해한다.
감수성 없이는 경험할 수 없고
경험이 없으면 감수성은 메마른다.
풍성한 속눈썹의 감성은
가슴을 적시는 촉촉함이다.
속눈썹은 뽑으면 안 되는 존재다.
눈은 쉴 틈 없이 시선을 따라간다.
속눈썹은 그 사이의 깜박임을 바라본다.
니따금 눈을 머물 시선을 잃는다.
방황하는 눈을 속눈썹이 지그시 감싼다.
감은 두 눈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속눈썹의 무게만큼 내면을 바라본다.
한 올 한 올의 파르르함은
찰나를 만난 환희다.
속눈썹은 뽑으면 안 되는 존재다.(-19-)
개척자 눈썹
큰 존재감은 부여받지 못했다.
그저 눈 위에 돋은 짧은 털이다.
이마와 눈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생존적 기능을 부여받지 못했다.
없으면 허전하나 없어도 산다.
소중한 눈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허나,영원한 주변인은 거부한다.
시선을 붙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눈보다 더 영향력 있고 싶었다.
이제,얼굴의 인상은 내 털에 달렸다.
눈썹 모양은 첫인상을 좌우한다.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33-)
학교 다닐 때, 우리는 하나의 추억을 기억한다. 놀것 거의 없었고,즐길 꺼리가 거의 없었던 우리가 엉덩이로 나의 이름을 쓴 적이 있었다.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것은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오락프로그램 가족 오락관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이처럼 국민 가족 유희꺼리, 시집 <엉덩이로 이름쓰기>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독특한 주제를 가진 시였다..인간의 몸속 부분 부분들을 관찰하고 있다.눈과 코,입,치아, 뇌,털, 그리고 해마 등등등 53가지 시들은 나의 몸의 일부분이며,내 삶이면서,나의 욕구와 욕망과 연결되고 있다.그 중에서 나의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얼굴의 중요한 눈과 속눈썹,눈썹을 선택하였다.이 세가지는 사실 그 사람의 첫인상에 해당된다.숱껌뎅이 눈썹이라 불렀던 우리는 미적인 요소와 깊이 연게되어 있으며, 여성의 미를 강조하기위해서 공들이는 부분이다.
눈은 생존 도구이지만, 눈썹과 속눈썹은 그렇지 못하다.하지만 보다시피 우리는 이 두가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인간의 깊은 심연의 틈새 속에서 누군가의 눈을 통해 그 사람의 맑은 영혼을 느끼고, 눈썹과 속눈썹은 그 눈을 돋보이게 하는 매개체이다.시는 그런 거였다.상징과 은유라는 두가지 도구를 활용해 무언가를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우리의 몸 속의 부분 부분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 역할을 이해하면서,시로 표현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시적인 깊이와 시적인 실험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