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꽃은 벌을 유인하기 위해 좋은 향을 낸다. 반면 냄새가 고약한 것은 말려서 바람에 날려 버려야 한다.흔적도 없이 말이다. (-11-)


안젤라에게 방을 내어 준 키라 세르게예브나는 '대학역'근처에 살았다.그녀의 집은 천장도 낮고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하지만 안젤라가 보기엔 궁전 같았다.이런 아파트는 가난한 마리야가 나오는 멕시코 드라마 <<마리야>>에서나 보았을 뿐이다. 키라 세르게예브나는 영화 평론가였고 영화사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이것이 어떤 직책이며 그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안젤라는 알지 못했다. (-16-)


키라는 그가 불러 주는 주소를 받아 적었다.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신호음이 들렸다.키라는 의자에 기대앉아 그제야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주사위는 던져졌다. (-24-)


안젤라는 지쳐갔다.청소,다림질, 풀 먹인 셔츠가 꿈에 나왔다.셔츠는 니콜라이다 매일 입고 나가기 때문에 매일 필요했다.하지만 조금씩 새로운 생활리듬에 적응해 갔고, 시간이 지나자 달라진 일상에 익숙해졌다. 창문은 전용 액체 세제로 손쉽게 닦을 수 있었다.한 번 뿌리기만 하면 유리가 반짝 반짝 빛났다. (-61-)


니콜라이는 문득 '존재하다'와 존재하지 않는다'를 구별하는 경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깨달았고,'해야한다'와 '하면 안된다'라는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따지고 보면 누구도 뭔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은 것 같았다.사실 쓰나미가 그를 쓸어가 버릴 수도 있었고,비행기와 함께 추락할 수도 있었고,병에 걸릴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게다가 러시아 남자는 수명이 짧다. (-88-)


니콜라이가 돌아왔다.안젤라와 사브라스킨도 진정했다.
"내가 얼마를 내면 되죠? 사브라스킨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100달러를 꺼냈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은 있다는 거네요." 안젤라가 그의 모습을 분석하듯 말했다. (-127-)


사브라스킨은 안젤라를 성장시켰다.그는 '존재하기'와 '소유하기'에 대해 알려 주었다.'존재하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그래도 '존재해야'한다. 반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안젤라는 사브라스킨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나브라스킨의 날개가 자라고 있었다.그는 피그말리온처럼 자신의 작품을 조각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155-)


한국인들에게 럿히아 문학은 생소하다.널리 알려진 소설가들을 제외하고, 러시아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모처럼 러시아 문학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클같은 나>을 읽게 되었다.러시아 페미니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다섯의 단편 소설을 엮었으며, 첫번째, 170여 페이지로 이루어진 <티끌 같은 나>는 이 소설의 값어치를 높여주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안젤라는 '천사' 에 유래된 이름이며, 소치는 일을 하는 어머니 나타샤 밑에서 태어나 마르트노프카 마을에 살게 된다. 마르크노프카 마을은 목가적인 분위기, 과수원과 거위가 평화롭게 노닐던 작은 마을은 카자흐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그러나 평화로운 마을은 안젤라의 꿈을 만들어주지 못한 열악한 환경을 추구하게 된다.그래서 안젤라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 모스크바로 향하게 된다.


안젤라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그동안 본인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고 살았던 안젤라가 영화 평론가 키라와 만나게 되었고, 니콜라이와 불륜에 빠지게 된다.그것은 어쩔 수 없는 안젤라에게 놓여진 현실이었다.니콜라스는 안젤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자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안젤라는 모르고 있었다.가수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무엇을 소유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그로 인해 가능성이 큰 니콜라이와 불륜에 빠지게 된 것이었고, 점점 더 안젤라의 삶은 피폐해지기 시작하였다.즉 소설은 존재와 소유가 없는 안젤라를 ,'티끌 같은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다.안젤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감이 발목 잡히게 되는 이유였고, 티끌에 불과한 존재였다. 즉 니콜라이와 불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모스크바의 사회 구조 밑바닥에는 자본의 힘이 있었고, 안젤라는 그 자본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자본은 안젤라에게 존재와 소유 두가지를 얻을 수 있는 매개체이다. 소설은 러시아의 사회상에 최적화된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우리는 자본이 있으면, 얼마든지 존재와 소유 두 가지를 가질 수 있고, 무명이었던 사람을 유명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소설에서 안젤라는 키라를 통해서,서브라스킨을 통해 그동안 본인이 얻고 싶었던 존재와 소유를 동시에 얻게 되었고,스스로 성장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