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테크놀로지 - 미학적 상상력으로 보다
고명석 지음 / 새빛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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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테면 헤겔은 예술은 직관(Anschauung) 의 영역으로 ,종교를 표상의 영역으로,그리고 철학을 개념의 영역으로 귀속시켜서 예술과 종교와 철학이 각각의 의식형태에 의해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한다.그리하여 요지부동으로 정확하게 고정된 '영원한' 위계 체계가 성립된다. 헤겔 전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러한 위계체계는 예술의 역사적 운명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가령 청년 셸링이 예술을 헤겔과는 상반되는 위계질서 속에 편입시켰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36-)


한 눙으로 본 정지된 시각의 총체적 모호성이 논리적으로 기하학적인 원근법의 여러 요구들과 양립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진짜로'세계를 평평하거나 구부러진 것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과는 양립할 수 없다. 

왜 재현에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 왜 우리는 기대감과 일치하는 하나의 해석을 선택하는 일이 언제나 보는 이의 몫이어야 하는가. (-81-)


이 당시 독일의 '라이프지히 신문'은 이 사진술에 대하여 프랑스판 악마의 사진이라고 부르고,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신의 상은 어떠한 인간의 기계에 의해서도 고정될 수 없다.라고 신성모독으로 취급할 정도로  이 당시의 사진의 출현은 충격이었다. (-143-)


판단력 일반은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 아래에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보편적인 것(규칙, 원리,법칙)이 주어져 있다면,특수한 것을 그 아래에 포섭하는 판단력은 (그것이 초월적 판단력으로서, 그에 알맞게만 저 보편적인 것 아래에 포섭될 수 있는 조건들을 선험적으로 제시항 경우에도) 규정적이다.그러나 특수한 것만이 주어져 있고, 판단력이 그를 위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해야 한다면,그 판단력은 순전히 반성적이다. (-19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20세기 초에 진행된 아방가르드 운동들이 복귀한다.1950년대 말과 1960년 대 초, 모더니즘의 내적 자율성을 비판하는 네오아방가르드 운동이 전개되었다.득 콜라주와 앗상블라주,레디메이드와 그리드 ,모노크롬과 구축 등과 같은 예술의 흐름들이 복귀한 것이다. 과거가 미래로부터 복귀한 것이다. 과거릐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미래로부터 '네오아방가르드'로 복귀한 것이다. (-229-)


우리의 삶을 보면 지극히 나 중심적이고, 핸재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분석한다. 현대의 문학 작품도 그렇다.우리가 쓰는 언어로 쓰여진 문학을 보면 과거를 문학으로 표현해도 그 기준이 현재에 머물러 있으며, 미래를 보더라도,그 기준점은 현재이다.그래서 내부적인 변수와 외부적인 면수가 문학 작품에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항상 예측에서 벗어나고, 오류가 발생하는 필연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서 기원이나 본질을 찾을 때마다 헤메고, 깊이 사유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특히 에술의 경우 더 그런 측면이 강하다.


이 책을 보면 ,먼저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우리가 예술하면,먼저 자본과 엮여 있고,지극히 대중적이다.또한 어떤 예술은 정치적인 색을 띠고 있으며, 제도권하에서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그 사건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문학인이며, 예술인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에술은 바로 그 시대의 표상이 되고, 그 시대의 흐름을 좌우한다.그래서 항상 앞서 나가게 되고, 사람들은 예술가들은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 말하고 있다.한편 이 책을 읽으면,먼저 예술의 개염, 예술의 기원은 어디서 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학한 판단을 찾아볼 수 있고,대중적이지 않으면서,순수함과 자연스러운 예술이 그 시초였을 알 수 있다.태초에 동굴 벽화가 있었고, 차후 자연에서 미를 찾고 그 미를 미학이라는 학문으로 체계화한 것을 보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질적인 특징도 내포하고 있었다.이 책은 그 기원에 대해서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에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이들은 어려울 수 밖에 없으며, 장인이 코끼리의 엉덩이를 보고 코끼리 전체의 모습인지 아닌지 찾는 것에 불과한 한계도 있었다'.


예술은 그렇게 인간이 개입되면서, 점점 더 자연스러운 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헤겔이나 칸트,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예술에 영향력을 미치면서,예술은 철학과 종교와 엮이게 되고, 점차 예술은 그 시대의 주류에 편입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종교적인 색체의 예술을 구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점차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나아가고 ,자본의 힘이 강해지면서,예술은 점차 종교적인 것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또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사진짝기가 처음 등장할 땐 하나의 예술로 취급된 사실을 보면 예술의 확장성을 엿볼 수 있으며,그 시대의 판단과 분석의 오류와 왜곡이 왜 나타나고 있었는지 평가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즉 그래서 우리는 과거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갈피를 못잡고 겉돌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많은 예술작품들이 소실되고, 현존하는 에술작품으 유래를 찾앚볼 수 잇는 역사적 사료도 제한적이다.미학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예술에 대해 퍼즐 맞추기에 매진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그 시대의 표상으로 예술이 정착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즉 사진이 나타내지 못하는 그 깊이를 예술을 통해서 느낄 수 있고, 색체 속에 의미와 가치를 예술가 나름의 해석으로 구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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