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나 그 모임의 이름에 '사 '라는 말을 쓴 경우에서 메이지시대가 시작된 1868년 이전에 이미있었다.그러다가 메이지 초기에는 이 '사'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24-)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현실 속에 있는 일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여 새롭고 이질적인 사상을 얘기하려 했다.그럼으로써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고 ,또한 그것을 통해 일본의 현실 자체를 바꾸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방법이었다.왜냐하면 취급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은 단어의 조작만으로 '카세트 효과'에 의지하려 하는 번역 방법과 달리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51-)


미시마 유키오의 '미'의 트릭은 이런 배경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그의 소설 속에서 '미'는 기습적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타난다.게다가 중요한 장면에 나타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는 소설 독자들이 읽을 만한 평론문 등에서는 '미'에서 의미를 제거해버리는 식의 발언을 한다.이렇게 그는 번역어 고유의 '카세트 효과'를 이용하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미시마 유키오는 마치 남비크랄와족의 추장처럼 행동하고 연극을 연출하여,독자에게 우월감을 과시하는 입장에서 이런 단어의 효과를 조작한 것이다. (-111-)


번역어 '자연'에는 우선 이처럼 원어(서구어) 의 뜻과 모국어(일본어)의 뜻이 혼재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혼재한다는 사실이 번역어 특유의 '효과'에 의해 은폐되어 있거나 혹은 이 단어의 사용자가 알 수 없게끔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질적인 두 뜻은 때로는 서로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을 일으키기도 한다.그때는 번역어 '자연'이 그런 모순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요컨데 번역어 '자연'에는 nature라는 원어의 뜻과 일본 고유어로서의 '자연'의 뜻이 혼재하며,그 결과로서 단순히 두 뜻이 공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3의 의미라고 할 만한 번역어 특유의 효과까지 포함되어 있다.이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157-)


즉 야나기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자유라는 말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졌고 왠지 처치곤란의 혐오스런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말한다.어린 시절의 경험이지만 그런 느낌은 '오랫동안'지속되었다고 한다.말의 의미를 파악할 때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관점은 중요하다.'자유'는 야나기타 구니오에게 '혐오스런' 나쁜 의미,나쁜 효과,나쁜 어감의 말이었던 것이다. (-215-)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번역의 깊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그동안 번역이란 사전에 의존한 언어 대체품으로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그러나 번역은 언어에서 또다른 언어로 이행되는 과정이며, 1대 1로 대체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문맥에 맞는 뜻을 써야 하며, 영어 강사 김기훈 강사가 영어를 잘 하려면 모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었다.즉 언어는 바로 살아있는 인간의 표현이며, 그 안에는 단어로서의 뜻 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도 고스란히 드러나야 하는 무형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더군다나 같은 단어가 대중들에게 널리 쓰여지지 않으면 사어로서 사라지게 되고, 국어 사전,영어 사전에나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조건을 가지게 된다.이 책에서 morden의 뜻,근세가 사라지고 근대로 바뀌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즉 원어가 번역어로 바뀌거나 번역어가 원어로 바뀔 때 ,그 과정에서  언어로서의 적절한 시소게임이 이루어지며, 소설가,번역가는 그 시소게임의 저울추가 되는 것이다.돌이켜 보면 자유라는 단어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영어로 freedom 의 뜻이 있었고, 일본어로 자유는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그럴 때 필요한 것이 두 단어의 전통적인 뜻에서 벗어나 3번째의 새로운 뜻이 나타나게 되고, 그 뜻이 바로 그 영어 단어의 원 뜻인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의 고전들이나 그리스로마 시대의 서양 고전들이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 쉽지 않는 이유는 언어는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즉 뜻과 뜻이 서로 결합되고,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뜻이 새로운 뜻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번역가의 적절한 중재 역할이 필요다.즉 한 권의 책이 번역 책으로 나오지만, 그 번역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시 해석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돌이켜 보면 우리가 번역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개화기 이후 ,우리가 쓰는 번역이 직역이 아닌 중역이 될 수 박에 없는 이유는 이런 과정속에 맞물린 것이며,영어나 프랑스어,독일어를 공부할 때 문법에 의존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도 이해할 수 있었다.즉 우리의 번역 체계가 초창기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일본책에 의존해왔고 차용해 왔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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