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
최경란 지음 / 오렌지연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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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옷감의 무늬 같은 것이다.씨실 날실의 한 올 한 올이 매일매일의 일상이다.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이다. 실이 한 올씩 오갈 때는 보이지 않지만,시간이 지나며 점차 일정한 향태의 수심이 밴다.행복감을 불어넣으면 온기가 감돈다.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해야 원하는 대로 정교한 무늬가 그려진다.촉박하고 욕심을 부릴수록 인위적이고 조악한 형상이 된다. 우리는 어떤 옷감을 직조할 것인가.운치있고 그윽하게, 소탈하고, 겸허하게,한적하고 고즈넉하게, 은은한 격이 깃든 삶의 무늬를 새길 수 있다면.... (-9-)


조금씩 쌓아가야만 완성되는 일이 있다.그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항상심을 지녀야 한다.아무리 넓은 운동장이라 해도 한 걸음씩 걸어 답파하는 개미처럼 그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욕이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려할 필요도 있다.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처럼 사이를 두고 쌓아가서는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수 있다.매일 일정 분량을 정하여 규칙적이고 꾸준히 해나가는 게 도움 된다. (-30-)


글을 쓰는 것은 책임이 깃든 행위이다.글은 한 번 발설하면 공중에 흩어버리는 말과 달리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대중이 볼 수 있는 지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공공성과 유사한 성격을 띠기도 한다.더욱이 글 쓰는 이들에게 글은 치열한 진심의 토로이다.'언과 행을 일치하겠다는 신성한 약속이다. 뜻 없는 말이나 본심이 아닌 말이 글자로 기록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82-)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일상'이라는 시간, 어떤 이들은 목표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또 다른 이들은 일 분 일초가 아쉽다.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는 확실히 뒤의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4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소설을 썼으니 남은 나날에 비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았을 것도 같다.이후 40년의 집필 기간 동안 장편소설만 무려 100권을 남겼고 중단편과 다른 장르까지 합하면 대략 천 편에 이르는 글을 썼다. 다룬 주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고 광범위했다.그렇게 열심히 쓰면서도 그는 늘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다. (-156-)


사람들은 스스로가 매긴 자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인다.그것이 매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섬의 지표가 된다.거기 합당한 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 수 없으므로 성실성과 완벽성을 기할 수 밖에 없다.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 역시 당신을 그렇게 대한다. (-249-)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죽음에 ㄷ가까워지는 과정이다.삶과 죽음은 사실상 공존하고 있다.소설 속에서 삶은 치열하게 사랑하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죽음이란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듯 모든 상실 역시 만남의 순간부터 예견되어 있던 일이다. 단지 함께하는 기간의 길고 짧음에 차이가 있을 뿐! (-321-)


정말 막막할 때가 있다.사방을 둘러봐도 벗어날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다.그럴 때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당연히 그렇다.넓게 보면 우리는 우주 속의 한 존재이다.우주가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조화와 균형의 속성 덕분이다.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긴다 해도 결국 큰 틀 안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우주의 속성에 대한 역행이다.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반작용이 생겨난다. (-400-)


산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없는게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살아가기 위해서,불의와 타협하게 되고,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내 의지와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많은 선택과 결정,바름과 옳음에서 벗어난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하고,후회하게 된다.우리가 만든 수많은 정답이 현실과 교차될 때 오답이 정답으로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그럼에도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뚜벅 뚜벅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음을 알면서도 불편해서 외면해 버리는 이유는 죽음을 목도하고 싶지 않아서이다.누군가의 죽음이 내 주변에 항상 엮여 있으면서도, 어제 봤던 사람을 장례식장에 보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인간과 인간 사이에 공감과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인생에서 조금 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이 책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삶과 엮이면서, 죽음으로 가는 긴 인생의 기찻길을 다리는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는 그 어떤 가치와 인생의 무게보다 더 중요한 부분들이다.나와 다른 사람과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면서, 나의 불행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그 불행의 씨앗은 타인에게서 얻는 경우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깨지는 것, 그 것이 왜 내 앞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되고, 큰 아픔에 의해서 잠 못 이루는 때가 우리에게 항상 나타나고 있다.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시름을 잊지 위해서 술에 의지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항상심이다.나의 삶의 발전을 위해서,내가 정해놓은 방향성에 다라 나를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내 삶의 항상성이며, 나의 실패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항상성이란 작은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소소한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것, 내가 정해놓은 큰 뜻이 있다면 ,거기에 맞게 나 자신을 바꿔 나가야 한다.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항상성이며, 법정스님이 강조했던 무소유의 가치가 항상성과 긴밀하게 엮여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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