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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론 -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
이한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무엇보다 <논어>가 바로 죽간 시절의 대표적인 텍스트다.죽간의 텍스트는 미주알고주알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압축'이나 '생략'이 핵심이다, 가능한 한 많은 내용을 작은 죽간에 다져 넣기 위한 방법이다. (-51-)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곧 허물이나 실수를 줄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말에 믿음이 실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례로 공자의 골칫거리 제자 재아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60-)
자유가 노나라의 무성이라는 읍을 다스리는 읍재가 되었다. 이에 공자는 자유에게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고 묻는다.자유는 이렇게 답한다.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때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또 공무가 아니면 한 번 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습니다. "(-101-)
선비라는 말에 뒤따르는 도덕주의의 그림자다. 그런데 도덕적인 사람과 도덕주의적인 사람은 전혀 다르다.도덕적인 사람은 스스로 도덕적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덕적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도덕주의적인 사람은 남에게 도덕을 강요하는 사람이다.도덕과 도덕주의가 엉키면 네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먼저 도덕적이면서 도덕주의적인 사람이다.이런 사람은 지행합일, 언행일치라는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다.우선 도덕이 하나일 수 없는데 자신이 도덕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만 조선과 같은 전근대 사회에서 이런 인간형은 선비라고 해서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28-)
'너그러우면서 엄정함'부터 그 이하 아홉 가지 다움이 어떤 때는 굳셈으로 부드러움을 보완하고 어떤 때는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보완하는 식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게 된 후에야 다움이 이루어지고, 또 그러한 다움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와 그 사람의 능력과 우열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171-)
"기미를 아는 것은 아마도 신묘하다 할 것이다.군자는 위로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귀되 함부로 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기미를 아는 것이다. 기미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은미하다는 뜻으로 길함과 흉함이 먼저 나타난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221-)
21세기 최첨단 과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현 시대에 여전히 논어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 군자를 강조하는 직업이 있으니, 그 대표적인 경우가 선비와 선생님, 정치인이다.공교롭게도 이 세부류의 직업은 지극히 도덕적인 직업을 강조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하며,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그래서 청렴 결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정작 수많은 이들이 청렴하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척'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는 이유이다.
먼저 이현우의 <군자론>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처세술을 배우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죄를 짓고,허물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어느 정도의 허물은 용납하는 사회 안에서, 인터넷과 CCTV는 그 허물마저도 들추고 있었다.여기에 덩달아 언론 매체들은 자신의 권리를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는 것에서 시작하며,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우리사회가 말하는 사회 내부의 공인들이다.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기부금을 적게 내어서 지탄받는 이들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작 그 지탄의 가해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되졸아 볼 여지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쓰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천상유수처럼 말을 하는 사람을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 언급하지 않는다. 말에 힘이 실리고, 꼭 필요한 말을 하면서, 생략과 압축에 다른 말을 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보는 말을 잘하는 것이었다.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정작 그 사람은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데,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자신이 쓰는 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리고 성찰하는 것이다.
21세기,현대 사회에서 군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하지만 우리 스스로 군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분명히 있다.살아가면서,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말을 줄이면서, 삶의 여백을 만들어 나간다면,지금의 혼탁한 사회는 좀 더 맑은 사회로 바뀔 수 있고, 말이 앞서는 사회에서 행동과 말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또한 스스로 자신이 나아가냐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 적재적소에 돈을 쓰고, 필요한 곳에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선비가 아닌 군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특히 말의 강략을 줄이고, 말을 하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