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꿈 - 칠순 기자 아들이 전하는 40대 부총리 김학렬 이야기
김정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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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월 25일, 민주당 정부의 김영선 재무부 장관은 쓰로 예산 4과장을 사세국장 서리에 임명했다.당시 서세국장은 지방의 징세조직들을 포함해 오늘날의 국세청장과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합친 것 같은 직위로,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의 자리였다. (-77-)


쓰루가 왕초밑에서 최장수 차관을 지낼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충언도 한몫했다.그들은 왕초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할 때는 "정통관료 제1호를 품지 못하고 내보내면 부총리 자격이 있는 것인가"라며 왕초를 다독이고, 쓰루가 지나친 하극상을 벌일 때는 나무라듯 그를 달래곤 했다. (-133-)


즉,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의 긴축 기조에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거기에 박통으로부터 "임자 말이야,국방부,문교부 같은 부처 예산 좀 잘 살펴봐"라는 추가 특명까지 받아 챙겼다.' (-239-)


쓰루는 왕초 때부터 악명 높았던 녹실회의를 타 부처를 장악하는 기회로 자주 활용했다.녹실회의는 그때그때 현안과 관련된 몇 명의 장관들만 모이는 회의였다.장관실과 붙은 부속실에서 열린다고 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 (-303-)


쓰루는 김학렬 전 경제 부총리였다.그는 1923년에 태어나 1960년대 대한민국 경제 , 예산을 움직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막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던 그의 과거의 모습에는 학교 선생님에서 고등고시 합격까지 이어지고 있었다.여기서 아버지의 과거의 업적을 칠순을 바라보는 아들 김정수 기자께서 써내려가는 걸 보자면, 40대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졌다.그만큼 그때 당시 아버지 김학렬은 대한민국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국가 예산을 따고, 대한민국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그 과정들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구조의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우리는 경제 부총리의 역할과 책임을 파악할 수 있다.차관급 인사에서, 경제부총리가 되기까지 제1회 고등고시를 합격하고, 박통 밑에서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그가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쓰루 위에 왕초가 있었고, 그 왕초의 포용력이 있었던 거였다.깐깐한 관료 출신으로서 소양강 댐 건설에 앞장섰으며,제1차 경제산업 발전 구조를 만들어 나갔던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누군가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신임을 얻으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즉 문제해결력이 업는 사람,행정능력과 소통능력,여기에 열정이 더해질 때, 그 사람은 적재적소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가게 되고, 사람들에게 깊은 신임을 얻게 된다.이 책에서 1970년대 초반,사십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김학렬 경제 부총리가 만약 이십년을 더 살았다면, 어떤 평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한번 더 되세김하게 된다.누구나 자리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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