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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평점 :
고대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서 탄생했다.첫 번째 언더그 캄피돌리오를 축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여섯 언덕의 이름을 소개한다.괄호 안은 라틴어 발음이다.
팔라티노,아벤티노,첼리오, 에스퀼리노, 비미날레,퀼리날레 언덕이다. (-38-)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리페타 항구의 계단식 안벽을 설계한 것은 건축가 알렉산드로 스페키 (1688~1729년)였다는 점이다.스페인 계단의 설계안 모집에는 필리포 유바라를 비롯한 쟁쟁한 건축가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페타 항구와 관련해 이미 유명세를 떨친 스페키의 설계안이 가장 유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무명이나 다름 없었던 데 상티스의 설계안이 선정된 것은 분명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바르카차 분수의 뛰어난 완성도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84-)
메이지 ,다이쇼, 쇼와의 세 시대에 걸쳐 일본인들의 마음에 이탈리아와 로마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모리 오가이가 옮긴 '즉흥시인'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국문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가 옮긴 뛰어난 문장들을 쉽게 읽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언어는 생물과 같아서 시대와 함께 바뀐다는 것을 모리오가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163-)
"거기에는 친구의 분명하고 간결한 필적으로 옮겨 쓴 피에트로 베리의 시가 가득 적혀 있었다.지금에야 말하지만 나는 이 종이를 수개월이나 부적처럼 품에 넣고 다니다 종종 펼쳐서 그 안의 한 구절을 읽곤 했다.그리고 베리의 내면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난 로마의 옛거리와 사람들의 생생한 세계를 영상의 힘으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235-)
이제 우리는 콘찰리아치오네 거리가 생기기 이전의 순례자의 마음으로 광장 안으로 들어가보자.순례자들은 오랫동안 가톨릭 정신의 본거지를 찾아가기를 염원했다.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거대한 돔을 오랫동안 마음 속에 그렸다.'영원의 도시'에 가까워지자 성벽 밖에서도 그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지금 보르고 누오보나 보르고 베키오 거리를 지나 산 피에트로 광장 끝에 섰다. (-294-)
열다섯권으로 이루어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항상 이탈리아의 로마는 여행하고 싶은 도시, 동경하게 되는 도시였고,역사와 의미와 가치를 동시에 누리게 되었다..로마라는 영원한 도시가 되어버린 값어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특히 한국보다 더 로마를 사랑하는 일본과 일본인은 항상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었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를 좋아하였다.그러한 현상은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100년 전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메이지 시대의 부흥기를 이끌면서 일본의 눈은 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인의 삶이 점차 나아지면서,그들은 로마에 여행을 더나는 것을 지상낙원으로 생각하게 된다.물론 이 책을 쓴 가와시마 히데야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로마의 도시 정경을 상상하게 되고 ,로마에 대해 동경하게 된다.시간과 공간이 유기적으로 엮이면서,팔라티노,아벤티노,첼리오, 에스퀼리노, 비미날레,퀼리날레 언덕 ,이렇게 로마의 중추적인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여섯 언덕을 소개하고 있다.로마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 로마의 재현은 점차 시대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그 과정에서 여섯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 국가 로마는 형성되었다.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고 하였던가,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오게 된 로마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의 근간이 되었고, 그리스와 함께 신화를 형성하게 되었다.여기서 로마는 그냥 로마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로마는 서양의 다양한 건축물 중에서 경외감의 상징적인 도시가 되었다.두려움과 존경을 함께 누리게 되는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고, 전세계 도시들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중국의 실크로드 뿐만 아니라, 서양 곳곳의 문화와 문명의 시작은 로마에 있었다.지금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지나면서 ,로마로 발길을 돌렸던 이유는 전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모든 길은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그 잔 가지가 지금의 현재의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도시들은 언덕을 중심으로 마천루가 들어서게 되었고,도로와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가 그 기틀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