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de deuil. Tagebuch der Trauer, franzosische Ausgabe (Paperback) - 26 octobre 1977 - 15 septembre 1979
롤랑 바르트 / Editions du Seuil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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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알이 온다.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지루하고,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네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60-)


오늘 - 내내 침울하던 중에 - 오후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슬픔의 순간, 너무도 아름다운 헨델의 오페라<세멜레 Semele> 3악장을 듣다가 눈물을 터뜨리다.마망이 말하던 단어 ("나의 롤랑, 나의 롤랑") (-130-)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65-)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디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아놔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204-)


1년 반 동안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아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그동안 나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임무들을 미루기만 하면서, 꼼짝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슬픔의 자기 순환적인 길 안에 갇혀 있었다.그러나 나는 언제나 한 권의 책을 씀으로써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짓곤 했었다.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집요함,은밀함- (-241-)


인간은 언젠가 죽음과 마주할 때가 있다.내가 죽거나 아니면,누군가가 죽을 때이다.죽음은 항상 내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일상적이면서, 어색함과 만날 때가 있다.나의 죽음과 자의 가족의 죽음,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3인칭 대명사처럼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경험이다.죽음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가치이며, 언어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기도 하다.죽음과 슬픔에 대해서 내면 속의 영혼의 울림이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음을 목도한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과 불안은 그 어떠한 언어로서 표현되지 못하고,부유하게 되는 이유였다.사람이 이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스스로 감정을 삭히면서 살아가는 것은 죽음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질적이면서,응시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겪어야 하는 존재이고, 그것을 똑바로 보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차원적인 생각과 사회를 추구하면서, 인간은 나의 죽음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도 챙겨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서, 인간은 점점 더 죽음에 갖혀버린다.그 죽음의 대상이 내가 직접 본적도 없고,소통해 존적도 없는 사람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이 책은 나에게 겸손함과 위로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체험하게 해주었다. 누군가의 애도 일기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기억의 실체이고, 감정이 있으며, 일기를 쓰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끝마무리는 희극이 아닌 비극이 될 수 있다. 그건 이 책을 읽는 것은 좋지만, 스스로 애도 일기를 쓰면 안되는 또다른 이유이다.내 안의 슬픈 감정과 아쉬움이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고,거기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삶에 대한 의미조차 내려놓게 된다.그 어떤 노력도 죽음앞에선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마망의 죽음으로 인해 거기에 속박되는 삶을 살았던 롤랑바르트의 삶이 마망 알리에트 벵제의 삶을 따라가게 된 것은 불가피한 선택과 결정이었다.견디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는 것,그것이 그의 마지막 저작물 ,애도 일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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