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한근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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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거지,머슴, 이 세가지는 한국인의 DNA 바닥에 뿌리깊게 내려져 있었다. 그건 우리의 근현대사 과정에서 결핍과 배고픔의 이유였고, 주어진 자원이 없었기에 스스로 배움을 통해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21세기 , 지금 우리는 배고픔에서 벗어난 상태이며, 쌀은 남아돌고 있다.그런데 우리의 뿌리깊은 한국인 DNA와 한국인의 습관은 현존하고 있다.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짐이 우리 삶에 있어서, 과유불급의 이유가 되고 있다. 다다익선,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거였다. 중용을 강조하고, 중심을 잃지 말라 하건만, 매번 유혹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빠른 일상 속에서 항상 넘어지고, 다치고,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신적인 허기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영원히 정지하는 것이 아닌 일시정지이다. 교차로에서 차가 사람이 있으면, 잠시 서 있을 줄 아는 배려가 요구된다. 갈등과 반목의 순간에 불쾌한 감정이 샘솟을 때 스스로 멈출 수 있어야만 우리는 건강하고,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생각만 하고, 사유하지만, 반추하지 않는 삶이 현존하는 이상,우리는 일시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일회용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즉 우리 스스로 편리한 삶의 덫에 갇혀서 살아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 쾌락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 정서적인 피폐함이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점의 변화이다. 신호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관점은 차들이 과속하는 이유가 되고, 사람들이 무단횡단하는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그 과정에서 서로 조심하지 않음으로서 생겨나는 인명피해는 불가피하다. 책에서 그것을 '신호등의 역설'이라 부르고 잇으며, 신호등이 없는 네덜란드와 신호등이 넘처나는 한국을 서로 비교하고 있다.그런데 신호등은 하나의 에시이며,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 신호등의 역설이 존재하고 있다.수많응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회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스스로 정화할 의지가 없는 한국인에게 강제적인 강요를 법과 제도를 바꿔 놓았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물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우리 스스로 물줄기를 돌리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되고 있다.단적인 예로 환경이 그러하다. 일회용 제품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한반도 전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 이르러서야 비로서 일회용 재활용 처리에 골몰을 앓고 있다.즉 이러한 원인은 우리 스스로 넘처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서, 스스로 정화되지 않는 삶,순환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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