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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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히틀러가 폴란드의 서부 국경지대를 침공하며 폴란드 영토를 독일에 합병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상황에서도 이들 폴란드 '애국자'들의 관심은 오로자 한 가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에 대한 증요였다.(-40-)


"내 생각에는, 용서라는 문제에 대해서 위대한 종교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봐.뭔가 차이가 있다면 이론에서가 아니라 실천에서겠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자네는 오로지 자네가 당한 일에 대해서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거야.물론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그렇다면 그 SS대원은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가?' 그가 잘못을 저지른 대상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살아 있지 않으니 말이야."(-133-)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일까요? 그렇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처벌이라는 것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질문입니다.또한 처벌을 받고 난 살인자를 용서핮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262-)


당신의 질문은 단순히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상의 것입니다. 가령 민족해방전선 소속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친구와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고문한 해병 하사관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 세상의 어느 누가 그를 두둔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라테나우가 암살된 후 그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어머니를 찾아가 위로했다는 사실에 나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은 바 있습니다! (-351-)


지금 한창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 또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을 실제보다 더 숭고하게 미화시키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경고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우리는 결코 생존자들에게 도덕적 태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용서하지 않음'이 곧 편안함이나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429-)


시몬 비젠탈은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학살 만행 가운데서 일가 친척 89명이 죽었고, 시몬 비젠탈과 그의 아내만 살아남게 된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은 자의 숙명을 안고 살아야 했던 시몬비젠탈은 집요한 나치 대원, 나치 무역자 추적을 통해 1000명 이상의 나치들을 잼판에 올렸으며,그중에는 아돌프 아이히만도 있었다.그가 생존 당시 1940년대 젊은 나치 대원이 찾아와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참회에 침묵으로 답변했던 시몬 비젠탈의 선택은 지금까지,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용서를 할 것인가, 아니면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문하는 사회 안에서 피해자로서, 인종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 가족이 모두 죽음으로 끝나버린 상황에서 , 용서에 대한 새로운 입장과 의미를 고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유대인 학살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 것이며, 여전히 문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잇는 책이다. 보다시피 지금도 인종학살은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잇으며, 대한민국의 공산당 척결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이후 우리는 수많은 학살과 제노사이드를 눈앞에 보면서,그 제노사이드의 주범이라 말할 수 있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미흠한 상태이며, 복수와 용서의 견곗헌에 서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6년전 일어난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보다시피 피해자는 세월호 유가족인며, 그들은 유가족을 하루 아침에 잃어 머렸다.진실을 찾기 위해서 국가에 호소하고, 그들을 지원해 왔던 민변도 있었다.민주사회이지만, 여전히 후진국형적인 대처 방안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언론들의 잘못된 행태를 엿볼 수 있다.그건 이 책이 왜 출간 된 이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지,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고, 누구나 무기력한 자화상으로, 자신이 고통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들에게 용서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몬 비젠탈 앞에 젊은 나치 대원이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울부짓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이 책에서 말하는 용서란 죄에 대한 댓가를 명확하게 지불하고 난 뒤 피해자 스스로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며,그것이 용서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올바른 정의였고 민주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보다시피 지금까지 우리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탈바꿈하는 현실을 자주 보고 살아왔다.용서에 대한 딜레마, 복수에 대한 피해자의 선택 앞에서 우리 스스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내놓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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