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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둠벙가엔 아직도 잠자리가 날고 있을까
변종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평점 :
영화는 내 얼굴을 외면하고 가려고 했는데 막상 갈 데가 없네. 사실 언니한테는 안 오려고 했는데..."
영화는 내 얼굴을 외면하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뭔 소리야?"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물었다.
"수현이 놈이랑 싸우고 나 집 나왔어."
당찬 성격의 영화네 모자는 곧잘 싸우곤 했다.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고, 자기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그 어떤 사람의 큰 고통보다도 자신에게는 제일 큰 고통이라 않던가.(-17-)
"우리 나라에도 그런 탐험 코스가 있으면 좋겠어.이혼을 한 여자가 홀로 배낭을 메고 아홉개의 산맥과 황무지로 떠나 온갖싷련과 두려움,위험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회복하고, 마침내 그녀는 수천 킬로미터의 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잖아.나도 그런 모험 한번 떠나 봤으면 좋겠어." (-76-)
"뭐하러 왔니? 나만 없어지면 잘살 수 있을 것 같이 나를 몰아대더니."
영화는 울컥울컥 말을 꺼냈다.
"옥상에서 저윽이 감동어린 목소리로 딴청을 피웠다.영화가 그네에서 벌떡 일어섰다.그 바람에 그네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죽어 버릴까 하다가 죽을 용기가 없어 여기까지 왔다.나 없이 잔소리 안 들어서 좋았을 텐데 왜 날 찾니? 나는 평생 사업을 하던 사람이야.뻔히 보이는 걸 어떻게 말 안해.아니, 말 안하려고도 해 봤어.그런데 너희가 잘하는 것이 없잖아." (-170-)
큰 마침표와 함께 단편 소설을 완성했다.
후련했다.그러나 작품을 끝낸 후, 허기지고 길을 잃은 미아가 된 외로운 기분이 든다.내 작품에 드러난 주인공은 대체로 어두운 탈을 쓰고 있다.아픔, 고뇌, 회한으로 차 있다고 할까. 작품 속 주인을 떠나보내면 마치 피붙이라도 되는 양 쓸쓸한 느낌이 남는다. (-232-)
이 소설의 원제목 '둠벙가'라는 단어에 꽂히게 된다.제목 '둠벙가'는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로, '웅덩이'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시골길에 가면 논두렁 가까이 흔하게 보이는 웅덩이에는 늪처럼 보여지며, 다양한 생테계가 공존하고 있다.잠자리가 있고,곤충이 있으며, 개구리가 있으며, 미꾸라지가 살아가는 것, 이 소설에서 주인공 유영화를 '둠벙가'에 빚대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 영남이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삶 속에 힘든 것들을 글을 쓰고, 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반면 영남의 막내 여동생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주류 사업을 하면서, 활달하고, 살아가면서 한마디로 철이 없다. 자신이 좋으면 좋은 것을 내색하고, 나쁘면 나쁘다 말하는 전형적인 도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보헤미안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같은 중년의 나이에 5학년 9반에 해당되는 영화를 바라보는 영남의 속은 복잡다단하였다.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아들 수현과 싸워서 가출하고,자신의 집에 들어온 걸 보면서, 영화의 인생을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스스로를 영화처럼 살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내성적인 영남과 외향적인 영화의 차이는 인생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소설 곳곳에 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하는 걸 보면 잘 도드라지고 있다.
영화는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었다.그건 스스로 사업에 결격이 되는 것을 숨기기 위한 발로였다. 하지만 둠성 둠성 나타나는 충청도 사투리는, 자신의 인생에 발목 잡히게 되는 또다른 이유였다.영남보다 세상에 대한 현실과 자본의 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음에도 영화 또한 스스로의 현실적인 삶에 대해, 이상적인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그러나 영남은 그런 영화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영화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딴지를 걸고 있었다.
이 소설은 여느 가정이나 비슷한 서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지금의 386 세대에 해당되는 영화와 영남, 그들의 삶을 보면 견디며 살아가는 영남과 참지 못하는 영화가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즉 이 소설은 누구의 삶이 정답이라 말하지 않는다.단지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 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