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쏟다
고만재 지음 / 마들렌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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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거장쯤 지나고 묘한 기분이 들어 옆을 쳐다보는 순간 아뿔싸! 갑자기 라테가 내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닌가, 피하기는 늦었다.하필이면 그날 입고 있던 베이지색 면바지와 함께 그녀의 하늘색 코트와 가방이 라테로 물들기 시작했다.재빠르게 일어나 일단 바지를 털고 가방을 뒤졌다.가방에 있던 물티슈와 휴지 그리고 손수건과 생수까지 긴급 투입됐다.휴지를 던져주자 당황한 그녀가 좌석부터 닦는게 아닌가?

"그건 내가 할 테니 코트부터 닦아요.빨리." (-35-)


남매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약간 투박해 보이며 쿠션이 있는 것을 골라 줬다.엄마가 "그럴까?"하고 웃음을 띠기 전 아주 잠시 머뭇대던 순간이 있었다. 남매도 점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난 알았다.엄마가 다른 신발을 보고 있었다는 것과 엄마는 엄마 이전에 여자라는 사실을.. (-103-)


어라! 잘못 본 건가?

살며시 고개를 돌려 본다.고막을 자극하는 여성의 바로 앞자리에 진정한 고수가 타고 있었다.버스에 타자마자 느꼈던 심상치 않은 기운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였다.50 대 초반의 여성! 목을 뒤로 제치고 두 다리를 여유롭게 펼친 상태로 입을 벌리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곤히 자고 있었다.버스 승객 모두가 짜증냈던 데시벨 높은 통화 목소리를 자장가로 듣고 있던 것이다. (-165-)


처음 문병 갔던 날 종헌이 아버지의 야윈 모습을 보며 울 아빠가 떠올라 많이 울었다. 종헌이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은 말할 수 없이 슬펐다.얼마나 종헌이가 보고 싶으셨을까? 종헌이는 또 타지에서 얼마나 울었을까?(-226-)


책 한 권속에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있다. 특히 반복되는 매일 매일의 시간들 ,그 안에 소소한 것들 하나, 장면 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다.돌이켜 보면,우리는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반복적이지 않은 특별한 장면 하나가 끼어 있을 때가 있다.저자는 바로 그 딱 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으며, 그 특별한 장면 하나 하나를 기억속에 담아서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 챡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일상이 비추어지기 시작하였다.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들, 그안에서 부족하고, 미흡한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고, 서로가 통하는 것,텔레파시적인 요소들을 끄집어내 우리의 삶을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특히 이 책의 책 제목이기도 한 '커피를 쏟다'는 특별하지 않지만,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출근,퇴근길 러시아워 속에서 커피 라테를 들고 지하철에 타는 젊은 여성은 그만 실수로 커피를 쏟고 말았다.그 순간적인 순간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고,과찰하고,기록해 나간다.그 안에서 빠지지 않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시 만나기 힘든 순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센스와 재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계산적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결국 그 혜택은 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걸,이 책 한 권 속에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 채워져 있었다.


두번째, 돌이켜 보면 우리 삶 곳곳에는 숨어 있는 고수들이 있다.그 고수는 보다시피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남들의 보편적인 틀과 형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보여주는 사람들, 불편하고,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누군가의 잔잔한 호수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누군가의 행동이 큰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그것을 관찰하는 저자에게는 그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고,그 시간의 처음과 끝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고 있었다.시간은 흐르지만, 그 흐름이 내 의식 속에서는 멈추어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세상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오늘과 내일이 다른 변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 냄새이다.서로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히 우리 사회는 따스해 질 수 있다.이기적인 삶,계산적인 삶에서 벗어나 사람들 틈바구니 안에서 자신의 고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따스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 그 기록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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