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val and Other Times (Paperback)
Tokarczuk, Olga / Twisted Spoon Pr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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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기슭에 이르러 두 강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얼마간은 서로 염원해 마지않던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수줍으면서도 소극적인 모양새로 나란히 흐르다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뒤엉킨다. 방앗간 부근에서 하나로 섞인 강은 이제 백강도 흑강도 아니다.또다른 강력한 강으로 재탄생하여 빵을 만들기 위해 곡물을 빻는 물레방아를 거뜬히 돌린다.태고의 두 개의 강, 그리고 이 두강의 뒤엉킨 욕망이 만들어낸 세 번째 강의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방앗간 기슭에서 흑강과 백강이 합쳐진 이 세번째 강은 '강'이라 불린다. 강은 고요하고 충만하게 흘러간다. (-7-)


1938년,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자신이 섹스에 눈을 떳다는 걸 깨달았다.그것은 현대 미술처럼 ,마리아 셰르처럼, 거칠고 열광적인 섹스였다. 그녀의 작업실 침대 옆에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다.거울은 마리아 셰르와 상속자 포피엘스키가 여자와 남자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생생히 비췄다.구겨진 침대 시트와 양가죽, 물감이 묻은 알몸과 찡그린 얼굴, 벌거벗은 가슴과 배,립스틱 자국으로 얼룩진 등이 거울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새로 산 자동차를 타고 크라쿠프에서 성으로 돌아오면서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마리아와 함께 브라질로, 아프리카로 도망치는 계획을 꿈꾸었다. (-94-)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결합되게 마련이란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지.결합의 필요성이랴말로 그 무엇보다 강렬한 욕구란다.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수 있지."
이반은 샛길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았다.그러고는 서로 꼭 붙은 채로 죽어있는 벌래 두 마리를 손가락으로 집어올렸다.
"이것은 곤충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지." (-181-)


파베우는 공무원으로서 가기가 관리하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들과 푸줏간의 여자 점원들, 술집의 여자 바텐더들을 닥치는 대로 안고, 그들과 잤다.그 사실을 미시아는 잘 알고 있었다. 파베우의 셔츠에서 립스틱 자국이나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발견하곤 했다. 그의 물건들에서 낯선 향기를 감지했다.그러다 결국 미시아는 파베우가 자기와 사랑을 나눌 땐 절대 사용하지 않는 콘돔이 가득 든 상자를 찾아냈다. (-255-)


랄카는 미시아 혹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그런 점에서 랄카와 미시아 사이에는 깊은 골이 존재한다. 사고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삼켜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 그 끊임없는 변화를 내면화해야 한다. 시간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작동한다.그 너머 어디에도 시간은 없다.랄카의 작은 뇌에는 주름도 없고,시간의 흐름을 걸러내는 장치도 없다.그러므로 랄카는 현재를 살고 있다.그렇기에 미시아가 놋을 차려 입고 외출하면, 랄카는 그녀가 영원히 떠나버렸다고 느낀다. (-308-)


크워스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이지도르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이지도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이지도르의 육신은 이미 꿈을 멈췄고, 심장도 더는 뛰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따뜻했다.크워스카는 이지도르를 향해 몸을 숙이고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세상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얼른 떠나렴.다시 돌아오라는 꼬임에도 절대 넘어가선 안 돼." (-355-)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이다. 2019년 노벨 문학상 발표 당시, 218년 노벨 문학상이 동시에 발표되었고,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이 선정되었다. 이 책은 참 묘한 책이며, 두께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느낌,철학적이면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성찰하게 된다.특히 폴란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폴란드의 근현대사를 동시에 살펴 보아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이 책에서 태고는 시간적인 의미이면서도,공간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지고 잇었다.태고의 시간이면서, 태고의 장소이기도 하였다.숲 속의 방앗간을 배경으로 , 아버지 파베우와 어머니 미시아 사이에 태어난 뇌수종을 안고 태어난 이지도르의 이야기,그 이야기는 레노페파,미시아, 크워스카, 플로렌티카, 루타와 아델카의 여성의 삶과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엮어내고 잇었다.


민담과 전설과 역사를 아우르는 한 권의 책에는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담아내고 있었다.제1차 세게대전,제2차 세게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는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고,그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고 있었다.소설 속 84개의 시간들은 인간의 시간이기도 하며, 사물의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우리는 이 시간들의 편린들이 서로 연결되고,네트워크하면서,서로 중첩되고 있었다.태고의 시간,태고의 마음은 그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추상화된 공간이며, 장소이다.같은 물리적인 개념임에도 누군가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으며, 누군가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태고의 시간들> 속에 버섯는 서서히 흐르는 시간들 속에서 숙성되어진다.작가는 여성의 삶과 폴란드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어가면서,그들의 삶의 태고는 어디에 있으며,선택권이 없는 그녀들이 가야 할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었다.성녀이면서 창녀였고,영매였던 자유로운 삶을 살앗던 크워스카와 그녀의 딸 루카,이들의 삶은 폴란드의 아픈 역사와 교차되고 있었다.살아있다는 것,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한 권의 책을 펼쳐 보면서, 폴란드의 문화와 전통,그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작가 한 사람을 알게 되면서,그의 문학 속에 폴란드라는 정체성이 깊이 스며들고 있었으며,철학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인 그들의 의식을 파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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