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딸 : 뒤바뀐 운명 1
경요 지음, 이혜라 옮김 / 홍(도서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로 마흔 아홉 살이 된 건륭은 몸을 잘 보양한 덕에 세월의 흔적이라곤 거의 찾을 수 없을 만큼 젊어보였다.훤칠한 이마와 깊은 눈동자, 오똑한 콧날과 굳게 다문 입매가 보기 좋게 어울렸고, 곧게 뻗은 등과 떡 벌어진 어깨는 근사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55-)


"저는 하자미라고 합니다.제 어미의 이름은 하우하이고, 저희는 제남 대명호 근변에 살앗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겐 아버지가 없었는데 어미는 그 이유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지요. 묻기라도 하면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미를 보며 저는 더 질문할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비록 아버지 없는 아이였으나 어미는 가산을 팔아가면서까지 가장 뛰어난 스승을 청하여 저를 가르쳤습니다. 하여 저는 금기서화와 시사가부를 두루 익혔고 열두 살 즈음엔 만주어도 배웠지요.그러다 지난 해 ,병으로 몸져누운 어미는 당신의 살태가 더는 힘들다 느꼈는지 저에게 비밀 하나를 알려주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실은 금상 폐하라는 사실을요." (-138-)


"마마, 제대로 하지 않으시면 걸음을 배우는 데만 보름이 걸릴 것입니다. 노비야 남는 것이 시간이니 상관없습니다만 공주께선 날마다 이 늙은이의 얼굴을 보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231-)


"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합해질 때 그대를 떠나리."
이강이 다시금 자미를 와락 끌어안았다.그 한마디면 족했다.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운명은 우리 손안에 있다고, 노력과 의지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문제와 맞서 싸울 거이라고.이강이 자미에게 벅찬 감정을 쏟아냈다.이강과 자미를 지켜보는 금쇄의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345-)


199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지금과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보수적인 색체가 강한 사회 안에서 예의와 법도를 더 중요한 대한민국 사회를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 당시를 되돌려 보자면, 일본 드라마와 중국 드라마가 한국에 도입되지 못했던 이유는 드라마 속 소재의 파격,내용의 파격 때문이다.특히 중국 드라마는 현대물과 고전물이 뒤섞이면서, 그 당시 케이블 방송국 인천 OBS 에서 틀어줬던 조미와 임심여 주연의 중국 드라마<황제의 딸>은 파격 그 자체였으며, 청나라 황실,즉 건륭제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된다. 이후 황제의 딸이 1부와 2부가 끝나고 난 뒤,조미와 임심여의 인기는 급상승하였고,이후 안개비연가, 협녀틈천관과 같은 중국 드라마가 한국에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황후와 용상궁을 보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년전 그때의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으며, 이제는 마흔이 넘어버린 엄마가 되어버린 조미와 임심여,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오황자 이강과 영기로 나온 소유붕과 주걸륜도 생각나게 된다.또한 이 드라마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자미와 함께 했던 여몸종으로 등장한 금쇄는 중화권의 최고의 스타 판빙빙이다.황제의 딸로 인해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였던 세 사람, 조미와 임심여, 판빙빙의 과거의 모습들을 상기시켜 가면서 한 권의 책을 펼쳐 들게 된다.


제비와 자미의 성향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자미는 아버지 없이 성장하면서, 어머니 하우하의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남다른 교양을 습득하면서, 성장하게 된다.반면 제비는 청방지축마골피 스런 스타일이며, 고아로서, 남의 집을 넘나들면서,재물을 편취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세상 사람들이 가장 무시하는 신분을 간직하고, 무지한 삶을 살았던 제비는 교양 가득한 자미를 만나면서,운명적으로 묘하게 엮이게 된다.건륭황제를 찾아갈 수 있었고,자신이 하우하의 여식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제물을 자미가 아닌 제비에게 돌아가면서,제비는 하루 아침에 건륭황제의 딸도 둔갑하게 되었고, 그동안 누리지 못한 삶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제비는 즐겁지 않았다.황제의 법도와 예의를 갖추는 것은 자미에겐 익숙하지만 제미에게는 고통 스러움 그 자체였다.글을 모르는 까막눈이었던 제비는 위기가 나타날 때면 항상 쥐구멍을 찾았으며, 그걸 처음 본 건륭제는 제미의 묘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지만, 그 선을 넘자 황실의 법도에 다라 제비를 처벌하게 된다.이 소설은 그렇게 제비의 운명적인 삶을 풀어가고 있는데, 황실의 황자였던 이태는 제미가 고아에다 도둑이라는 것을 너무 잘알고 있다. 반면 드라마 속에서 소유붕이 맡았던 역할 영기는 제비의 매력에 묘하게 끌리게 된다.반면에 황자 이강은 제비보다는 자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공교롭게도 자미의 몸종이었던 금쇄는 이강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금쇄의 행동 변화,마음의 동선 파악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와 원적이 차이점이라면, 용상궁과 황후였다.두 사람은 드라마 속에서 항상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제비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등장하고 있다.그러나 원작에서 두 사람은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으며, 용상궁은 황실의 법도에 따라서 제비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 원칙에 따라 행동하였고, 건륭황제도 용상궁의 원칙주의를 믿고 따르는 편이다. 그렇지만 제비는 그런 황실의 원칙과 법도,예절을 배워본적이 없었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지만, 성 밖을 나갈 구실만 찾게 된다.어쩌면 지금으로 보면 현대판 다이애나가 아닐 정도로 제비는 그 시대의 불우한 존재였으며, 드라마 속에서는 극적인 재미를 첨가하고 있다. 


원작을 보면서, 그때 당시 봤던 드라마 속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스쳐 지나갔다.지금은 제비의 캐릭터가 너무 익숙한 캐릭터였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하였고, 성격은 다르지만,쌍둥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미와 제비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실제로 중국 드라마는 황제의 딸 1부와 2부에 조미와 임심여를 내세웠으며, 황제의 달 3부에는 또다른 주인공을 등장시켜 황제의 딸 인기를 계속 이어 나가게 된다.이제는 전설의 드라마가 된 황제의 딸의 원작을 펼쳐보는 그 느낌이 나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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