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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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결에 날려 발이 드리워진 창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 상소 위로 한들한들 떨어져 내렸다.나는 말없이 느린 손길로 상소를 덮었다.
헤어지던 그때만 하더라도 자담은 행동거지가 말쑥한 소년이었는데 벌써 딸까지 두었다니...서글픈 와중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뭔가를 털어낸 듯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황릉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던 그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생겼다니, 나도 사뭇 안심이 되었다. (-26-)


"부귀영화를 아무 대가 없이 얻는 줄 알았더냐?" 나는 자조했다."지난 세월 동안 너는 근사한 내 삶만 보았지.내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가슴 졸이며 사는 것은 보지 못했다.소금아.네 운명만 기구한 것이 아니야.근사한 삶 뒤에는 그만큼의 괴로움이 있는 법이다.너에게는 너만의 세상이 있었는데 구태여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한 까닭이 무엇이냐?" (-168-)


위한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피에 젖은 살구색 봉황 두루마기를 바쳤다.그것은 황후만 입을 수 있는 속옷이었다.송희은은 그 ㅍ피에 젖은 두루마기를 받아 확 펼쳤다. 
비단 두루마기는 이미 시뻑ㄹ건 피에 젖어 있었으나, 기품 있고 섬세하며 웅건한 필치가 옷을 뒤덮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호요의 옷 , 자담의 글이었고 옷자락 아래 찍힌 선홍색 옥쇄가 눈에 들어와 박혔다. (-340-)


정서대장군 사소화는 극성 결전 중 홀로 적의 후광을 뚫고 들어가 적군의 대장군을 베어 죽이고 승세를 굳혔으나, 아홉 군데나 중상을 입은 채 경사로 급히 돌아오는 길에 부상이 악화되어 사흘 전 안서군에서 급사했다.
조정 안팎은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았고, 모든 신료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530-)

지킬게 있는 이는 목숨을 버릴 각고를 가지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권력에 가까울수록, 그것이 소중한 가치라면, 내 목숨과 맞바꿀만 하였다.유목민족 돌궐이 국경을 넘어오면서, 중국 본토를 유린하고 있을 때, 후에 번왕이 되는 소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돌궐을 막아내야 했다.그 과정에서 소기 장군과 왕현과의 관계는 점점 더 삐걱거리게 된다.15세에 혼인을 했던 왕현은 어느덧 10여년간의 혼인이 지나 고모가 남겨놓은 정치적 유산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사건과 타이밍이 맞을 때,경험과 사유가 어우러지면서,고모의 말씀은 왕현이 정체성과 엮이게 된다.


소금아도 왕현처럼 지킬 게 있었다.왕현이 권력을 지키려 했다면,소금아는 사랑을 지키고 싶어했다.소금아와 자담, 소금아는 지킬 것이 있어서 거짓말을 하였고, 그 거짓말을 누군가가 눈치채고 말았다.서로의 신분적인 차이,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게 되었고, 금아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댓가는 왕현의 냉정함과 맞물려 잔인함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지키고 싶은 자와 빼앗으려 하는 자의 치열한 다툼, 어릴 적 소녀와 소년이 만나서 ,서로의 길이 엇갈리면서, 서로의 우정은 어느덧 배신과 의심으로 바뀌고,서로가 믿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선택하면 안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결정하지 말아야 하는 그 순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왕현의 고모는 알고 있었고, 왕현은 알지 못하였다.하지만 권력과 생존과 엮이게 될 때, 스스로 그 결정과 마주하게 되는 왕현의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권력의 최정점에 있을 때, 비밀은 꼭 지켜져야 했다.그들의 치부는 결정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백치가 된 황실의 자녀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미움의 씨앗이 되어 버렸다.소기 장군의 가장 가까운 세 사람들 조차도 소기 장군의 믿음을 저버리게 된다.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왕현은 눈앞에 보면서,깨닫게 되었다.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스스로 대처하지 못한다면,자신의 생명 마저도 스스로의 발목에 잡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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