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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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이 막 갈무리되던 당시 조정에서는 각 계파가 세를 이루고 4대 세가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다투고 있었다.큰 오라버니가 진민장공주와 혼인하면서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지.내 여동생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병권을 쥐고 있던 경양왕과 혼인해야 했고, 나는 수많은 세가의 영애들을 제치고 태자비가 되어 중궁을 차지해야 했어.그래야만 우리 왕씨 가문의 명망과 권위를 떠받치고 숙적들의 기세를 꺽어 오늘날의 사씨 가문과 같은 몰락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어찌 오늘날의 안락함과 영화를 누리고 비할 바 없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느냐>" (-58-)


소기는 탄식했다. "호족과 한족은 원래 순망치한의 관계요, 수백년에 걸쳐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이어오는 동안, 누가 이기든 백성들은 항시 고초를 겪었소.나라의 국경을 없애 핏줄이 서로 엮이고 예의와 풍속이 서로 스며들어 너와 내가 뒤섞이므로 우애 있고 화복한 하나의 민족으로 합칭 때만이 근본적으로 살육을 멈출 수 있소." (-272-)


옥수는 자신이 언젠가 당당히 송희은의 정실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옥수는 내게 자신의 목숨과 충성을 바쳤기에, 나는 옥수가 가장 원하는 모든 것으로 보답할 것이다. 그녀에게 신분과 명예와 지위를 줄 것이고, 꿈에도 그리던 사내를 낭군으로 맞이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내의 마음만은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며, 다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녀 스스로 얻으려 노력하되, 얻으면 다행이요,얻지 못해도 팔자려니 해야 할 터... (-457-)


내가 사는 곳에서 원주로 가는 두시간의 기찻길과 동했했던 두 권의 책이 제왕업 상 하 였다.갈 때 제왕업 상을 읽었고,오면서 제왕학 하를 완독했다.각 권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이지만, 두 권 모두 네시간 남짓 완독하면서, 중국 소설 속에 빠져들게 된다.여성 작가의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이어서 그런지 , 전체적인 관점이 배신과 암투, 질투와 그 안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왕현의 심리 묘사가 세세하게 그려졌으며, 돌궐이 중국 땅을 침투하면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던 6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200년 남짓으 기간 안에서 중국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버링허우 세대인 메이위저가 쓴 책으로서 장쯔이 주연 중국드라마 <강산고인>의 원작이기도 하다.여기서 장쯔이가 맡은 역할은 소설 속 주인공 왕현이며, 황실의 후손은 아니지만,소기와 결혼한 정실 부인이기도 하다.


왕현의 어릴 적 이름은 아무였다.소기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황실 내부에서 함께 해왔던 명망높은 가문들의 자손들과 두루 엮이면서, 즐거운 날을 보내게 된다.그 행복하고, 즐거우면서, 서로의 우애와 우정을 느꼈던 그 순간들은 거져 얻은 것응 아니었다. 아무가 왕현이 되는 15세가 된 이후부터 점차 자신의 자아와 현실들을 파악하게 되고, 사라지느 것들에 대해서 기억하게 된다. 전장을 누비면서,온몸에 흉터를 남겨야 했던 소기 장군은 황실 자손이 아니기에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한편 왕현은 명망높은 왕씨 가문의 자손이며, 그 가문은 자담이 속한 사씨 가문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 가문은 서로 적대관계이지만, 아무와 자담은 가문과 무관하게 우정과 사랑을 속삭이면서, 성장하게 된다.


권력과 이해관계가 거리를 두고 있을 때 그들은 순수했고, 아무는 소녀로서의 기품을 ,자담은 소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그래서 아무는 자신의 미래가 될 황실의 고모의 말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권력과 무관하였기에 스스로 위험에 처해지지 않았고, 함께 해 왔던 아이들과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아무는 온전히 자신만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세상 사람들은 아무에게 행복과 가문의 영예를 주었다.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앞에 놓여지는 것들은 그다지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는 바뀌고 있었다.소기 장군의 정실이 되면서, 권력에 점점 더 가까워졌으며, 1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황실 내부에 일어나면서,아무는 점차 냉철하면서 ,고모처럼 세상의 고통들을 견디는 왕현이 되어졌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권력과 제왕이다.제왕에 대해 크게 관심 두지 않았기에 아무는 행동과 말에 잇어서 자유로웠다.하지만 가문과 가문의 결혼,즉 정략 결혼 후 소기와 사랑을 속삭이면서,자신의 현재 위치를 자각하게 된다.자신의 몸은 온전히 자신의 몸이지만, 가문의 영예를 위한 몸이며, 국가의 존속을 위한 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의 긋런 속사정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왕현이 되었고, 때로는 아무가 되었던 소설 속 주인공은 권력의 언저리에서 배신과 죽임을 눈앞에 보이고, 정신적인 지주였던 고모가 남겨 놓은 말들이 자신의 몸에 새겨지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10년 동안 변해가는 아무의 모습,제왕이 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아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그 모든 일화들의 속성과 편린을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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