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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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너무 깊이 빠졌습니다.

들어가긴 했는데
나올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평생 
헤매 다닐 것만 같습니다. (-18-)


능소화

한 순간 마주침으로 인해
온 마음 빼앗길 때가 있다

그 한 순간 떨림으로 인해
한평생 흔들릴 수도 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능소화야
누군가를 위한 꽃으로 핀다는 건
그렇게 한평생 흔들리는 일이니

지는 것도 한 순간의 일
이승에서의 삶도 어쩌면 한 순간의 일
더 못 보고 속절없이 지더라도
너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이 억겁의 시간 중 어느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으로 (-24-)


낙엽의 위로

한동안 매달러 있었다.
이제 잡은 손을 놓겠다
너를 벗어나야 나는 
잠시나마 비상할 수 있었음을

미안해하지 마라
네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떠나는 것이다.

미련은 
서로에게 짐만 될 뿐이니

헤어짐이 있어야 자유롭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33-)

죽기 살기로

살아가다보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날이 있다
내뱉을 수 없는 아픈 숨결들이 속으로 타서
시커먼 숯이 되고 절망이 되는 그런 날

살아있다는 것이 짐스러울 때도 있다
세상에 나 있는 수많은 길 중에서
하필이면 내가 왜 이길로 들어섰을까 할 때
세상의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그 사람을 택했을까 할 때
믿고 있었던 것들이 등을 보일 때
딱 그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97-)


헝가리에서 1930년대에 나온 노래,글루미 선데이를 나는 즐겨 듣는다. 우울할 때,우울한 노래,우울의 극단을 달리는 노래가 도리어 위안이 된다. 사랑에 대한 위로, 더나아가 스스로의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죽음을 부르는 노래를 상당히 사람의 마음을 크게 울렁거리게 된다.노래가 가져다 주는 위로가 도리어 그 위로를 느낌으로서 죽음으로 내모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까 싶어진다.사랑하게 되면,그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현실로 비출 때, 우리는 사랑 앞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 이정하 님의 시는 바로 그러한 글루미 선데아를 생각하게 되는 시였다.숲에 들어가면 나오는 출구를 잊어버리는 것, 그럼으로서 숲에 들어간 것이 정말 후회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달리다가 포기하는게 두려워 출발조차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이끌리게 되면, 이런 현상은 반복될 수 있다.사람들과 유기적인 관계가 반복되고, 관계가 끊어지는게 쉬워지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우리는 상처를 입는 일이 매순간 반복되고 있다.그런 순간이 반복될 수록 우리릿 스스로 무디어져야 하건만,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각은 슬픔으로 아픈 기억을 지우는게 아니라, 그 상처를 받았던 그 순간만 지워지는 것 같았다.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함으로서 느꼈던 상처들은 물리적인 폭력을 넘어서서 정신적인 생체기를 남기게 된다'.


이 책은 지극히 남성의 사랑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안고 있었다.왜 우리는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한쪽은 불리해질 수 있음에도 우리는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말한 마디 하나 하나 조심스러워지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나이가 먹어감으로 인해 이성간에 더 조심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 하나,단어 하나,문장 하나 잘못 사용함으로서 인해,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나닐까 생각하게 된다.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 결국에는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나 스스로를 가두어 버림으로서 느껴지는 고통과 헤픔,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사랑의 모순이었고, 그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상당히 위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외로움과 고독을 선택한 수많은 자아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한 권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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