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전 14 - 대권 암투, 새로운 후계자
왕샤오레이 지음, 하진이.홍민경 옮김 / 다연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조조는 가후의 영악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가후에게 먼저 선심을 쓰고 난 뒤 본론을 꺼내 그가 사양하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처음부터 벽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조조를 심란하게 만들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후가 사양하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왕후의 가문에서는 체면을 세워줄 계승자가 필요한 법이지.과인 역시 바로 그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네.문화 형은 총명하고 통찰력이 뛰어나니 내 물어보고 싶네.그대가 생각하기에 과인의 아들 중에 누가 대통을 잇기에 적합할 것 같나?" (-55-)


"천하에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는 같지만 그 술책이 제각각입니다.흔히 구주와 신하가 인연을 맺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왕중선대인의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지요.시중이라는 관직은 매우 맡기 힘든 직책입니다. 직무를 잘 수행하면 사람들이 '상백'이라 칭송하고, 또 잘 못하면 '요강지기'라고 욕하기 일쑤지요.왕공이 정도를 잘 지키면서 위왕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도 능히 대왕의 뜻을 잘 맞출 수 있다면 입신양명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무릇 군자는 도를 근본을오 삼아야 하겠지만 술책에도 능해야 합니다. "(-75-)


부름 전 그날, 연회에서 조조가 일찍 자리를 떠났을 때 상당수 관원은 임치후의 위세가 등등한 것을 보고 너나없이 그에게 다가가 환심을 사려 애썼다.선우 호주천 역시 임치후가 위왕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85-)


'이제는 조조의 미움을 살지언정 조비의 눈 박에 나서는 안 된다.'
조조는 비록 성격이 교활하고 간사하지만 속마음을 감추는 법이 없었다. 그 때문에 설사 조조에게 죄를 지어도 그의 기분을 살펴 듣기 좋은 말로 기분을 풀어주고 몇 가지 환심 살 일을 하면 용서 받을 수 있었다.그러나 조비는 달랐다.겉으로는 인자해 보이집만 시가심이 많았고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그런 부류의 인물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복수한다는 것을 공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97-)


사실 강동군이 합비전투에서 대패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군중에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병사들의 병세는 호전되기는 커녕 날로 극심해졌고, 여기에 또다시 전염병이 발생하여 이젠 병사가 온전한 부대가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지난 반년간 정보와 황개 등 노장군이 연이어 유명을 달리했고, 맹장 능통 역시 중병으로 병석에 드러누운데다, 주유를 대신해 전략을 세우던 강북의 대장군 손유마저 병으로 죽고 말았다. (-176-)


조조는 조비를 책립하기 위해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교사 조달과 노홍을 죽인 것뿐만 아니라 임치후 관저의 모든 속관을 이속시켰고, 며느리 최씨까지 죽였다.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조식이 총애를 잃었으며, 그 총에가 조비에게로 다 쏠렸다고 생각했다.건안 22년 10월, 조조는 정식으로 조령을 반포하여 조비를 위국 태자로 세웠다.또한 양무를 태자태부로 , 하기를 태자소부로 ,포훈과 사마의 등은 태자중서자로, 사마부와 왕창 등은 태자사인으로 임명하여 덕과 재를 겸비하고 면명을 빈틈없이 고려한 태자부를 세웠다. (-285-)


그 모습을 조조는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조조가 조창을 중용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존재했다.첫째 조진, 조후 외에도 젊은 장수를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전부터 생각해왔다.둘째 조비를 압박해야 했다.마지막으로 조비를 시험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모만큼 자기 자식에 대해 잘 아는 이 없는 법이다.겉으로는 관대해 보이지만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태자의 속내를 조조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무쇠처럼 조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맷집'을 키우는 것이라고 조조는 판단했다. (-390-)


달이 차면, 때가 되면 달은 기우는 법, 한나라의 황실을 물려받는 유씨 집안의 장인 조조는 이제 위왕이 되었다.하지만 자신의 일생을 전장에 누볐던 조조는 위왕이 되자마자 후계자 고민을 하게 된다. 초대 왕이 되었지만 조조는 후계자를 낙점하지 못하였고, 두 아들 임치후 조식과 오관중랑장 조비 사이에서, 서로 경쟁을 시켜 후계자로 적임자를 가려내는 과정들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태자를 책봉하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책사 가후가 있었다.가후는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로 인해 은둔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아직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움직이지 않음으로서 도리어 애가 탄 것은 조조 쪽이었다.영악한 가후와 노쇠한 조조 사이의 시소 게임은 결국 기다림이 강한 쪽이 승리하는 법이며,  신하들이 후계자로 낙점지은 임치후 조식보다는 ,자신이 고르고 고른,시험하고 또 시험한 오관중랑장 조비를 낙점짓게 되었다.


<삼국지 조조전>은 난세에서 줄을 잘 서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조조의 신뢰를 얻게 된 가후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조비가 후계자가 되는 그 순간 조식의 밑에 있었던 이들의 운명은 불보듯 뻔하였다. 최염의 여식이자 조조의 며느리였던 최씨가 후계자가 결정 난 뒤 죽임을 당하였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걸, 삼국지 조조전에서 조조와 조비의 인생 속에 고스란히 녹아내고 있었다.한편 조조에게 또다른 장애물이 있었으니, 촉의 유비와 오나라의 손권이다.여전히 노쇠한 조조에 비해서 젊은 손권은 강동의 맹주였다.하지만 역사의 운명은 조조의 손을 흔들어 주는 것처럼 보여졌다.전쟁은 불가피하게 전염병을 창궐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고, 강동의 세력권은 그 전염병을 막지 못해 조조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주유의 죽음 ,손권의 힘의 약화, 그 과정에서 조조의 후계자 책봉은 현실이 되고 있으며, 조비가 후계자가 되기까지의 기다림의 결실들이 열매로 맺어지고 있었다.그리고 이 소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무언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 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냉절하고 철두철미한 조조의 리더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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