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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보이 ㅣ 땅바닥 Essay 3
조성자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댁은 애기도 안 키우요.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그리고 여태껏 쿵쿵 소리는 돌이 지난 남자 아이가 놀이기구인 말타기를 하는 소리였다는 걸 알고 나이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마음속으로는 어서 나의 딸이 시집가서 손자도 낳고 그러기를 바라면서 남의 집 손자 뛰어노는 소리에 화를 내고 살았다니 헛움음이 나왔다. (-36-)
신속함에 놀라며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미국 뉴스본부에 있는 앵커가 팽목항 현장 기자에게 질문을 한다.
"왜 그 많은 학생들은 배가 기울었는데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62-)
1970년대 대학시절 어느날 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삼사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지도 교수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저녁 대접을 받았는데, 교수가 갑자기 "자당님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77-)
차이코프스키의 '외로움을 아는 자만이'를 듣다 말고 스마트 폰 주소록을 뒤진다. 누구에게 전화해서 한잔 하자고 할 까.아무래도 우울증 같다는 그 친구? 무슨 소리냐 각방 쓴지 오래된다는 그 친구? 오래전 교통 사고로 남편 잃은 그 친구? (-99-)
"옹야, 옹야.할머니가 밥줄게에~" 하면 내 새끼들은 졸졸졸 따라온다.우리 아기들 동영상도 다수 찍어서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친구들이 손자 자랑 시작하면 바로 내민다. 카운트 펀치로 그만이다. 마음도 즐겁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기 마련이고 모든 병에는 약이 있고 말고 싶었다. (-103-)
계산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돈 세는 것도 어눌하다.잘 세어서 은행에 가지고 가도 나의 백만원이 은행의 돈 세는 기계에서는 99만원도 되고, 102만원도 된다.하다 못해 김치통에 담을 때도 적당하다 싶어 고른 김치통은 어김없이 작거나 너무 크다. (-116-)
중학 2학년 여학생 조아무개는 범생이다.학급반장에 학생회 간부도 맡고 성적도 최상위다.조아무개는 6월 어느날 등교하자마자 배가 아프다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간다.평소와 다른 모습에 선생님은 선뜻 조퇴를 허가한다. 조아무개는 책가방을 챙겨서 교문을 나설 때까지 아픈 표정을 유지한다.친구들도 걱정해주며 "병우너에 가봐라" 한다.교문을 나서자마자 조아무개 학생이 간 곳은 병원문이 아니라, 광주시 실내체육관, 교복 차림으로 30분 이상 걸어서 도착한 곳이다.체육관 앞에서부터 인파가 상당하다.싱글벙극 웃으며 체육관에 들어선 이 학생은 관중석의 맨 앞자리에 앉는다.링 바로 앞이다. (-129-)
우리 앞에 놓여진 삶, 지극히 심각할 이유도 없으며,지극히 가벼운 삶이 될 필요도 없었다. 주어진 삶 속에서 내 삶에 대해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똑같은 삶이라 하더라도, 더 행복한 삶을 충분히 채워 나갈 수 있다.그건 우리가 말하는 지혜로운 삶이며, 그 삶 속에 평이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베란다 보이'는 두 부류였다.먼저 베란다에서 뛰어 노는 말 그대로의 날것 그대로의 소년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 성인남자이다.잠자는 공간, 쉬는 공간에서 벗어난 그곳은 어쩌면 남자들의 또다른 동굴이며, 현대인들에게 피신처나 다름없는 곳이다.그런데 그 공간마저 우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층과 층 사이의 소음들은 베란다를 통해 느껴지고, 담배 내음새도 마찬가지이다.청각과 후각을 자극 시키는 그 공간마저 현대인들에게 없다면, 현대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피난처는 어디를 선정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저자는 남다른 방법으로 그 공간에 대한 배려를 허용하게 되었다.시끄럽더라도 그것이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고 잘 넘어간다면, 이웃간의 갈등의 소지는 적어지며,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 먹지 않게 된다.
책에 나오는 조아무개는 저자 조성자였다.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객관화하고, 관찰하고 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저자는 그 당시 대학교 입학 할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수재이다. 1950년대에 태어났고, 1970년대에 대학을 갔다는 것은 재력으로나,지적인 수준으로 보나 또래보다 나았던 것이다.그러나 그 당시 유혹은 모범생에게도 어쩔 수 없었던 것같았다.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땡땡이를 치는 저자의 감춰진 삶을 거낸다는 것은 소소한 기억이며,즐거움이 된다.그 즐거움이 우리의 삶 속에서 행복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정상적인 삶으로만 우리 삶을 채워 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짧은 삶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은 우리 일상 속에서 반복된다.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도, 그 죽음이 내 몫이 될거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은 시간이 흐르면, 그 변화는 차이가 날 수 있다.결코 죽음에 대해서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조성자님의 <베란다 보이>였다.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때가 되면 답이 내 앞에 놓여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느낀다면, 지극히 심각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