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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회화실록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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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들을 확실하게 제압해줄 무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성계가 역성혁명 세력의 지도자로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어떤가 초상 속 남자는 능히 그럴 만한 인물로 보인다.치밀한 지략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이성계에게 그 재능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다. (-19-)
<몽유도원도>는 가로 1미터의 아담한 두루마리에 그려졌다.그림은 왼쪽 나직하고 평화로운 풍경에서 시작된다.호홉을 고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꿈 이야기, 안평대군이 발문에서 밝힌 '우뚝한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말그대로 험준하고도 그윽한 산세다. (-62-)
그림 위쪽으로부터 살펴보자.왼편 우뚝한 봉우리를 중심으로 ,먹의 농담을 조절하며 저 멀리 제법 아득한 산세까지 담백하게 담아내었다. 그런데 중심의 저 봉우리는 어딘가 낯이 익지 않은가.도성을 지키는 백악의 모습이다. 멀리 나들이 떠날 만큼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었으니 도성 인근의 맑은 물가를 골랐을 것이다.(-126-)
<무이구곡도>는 참담한 현실을 증언하지도,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그 태생 자체가 전쟁과는 무관한 그림이기 때문이다.이 지점, 이질감이 바로 당시 지배층과 맥성들 사이의 거리감인지도 모른다.우리 땅을 지키겠다는 간절함으로 조선 강토를 화폭에 담기는 커녕 이상 속의 무이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라니, 백성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겠는가.(-178-)
1995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tv 쇼 진품명품 프로그램이 있다.그 프로그램은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온 가보와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진품과 가짜를 골란내는 방송프로그램이다.그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말미에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 그림이다.그림을 보면 산수화나 누군가의 초상화가 나올 때가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의 그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20년동안 장수프로그램으로서 그 프로그램 안에서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조선시대의 다야한 화풍과 그 시대상의 분위기였다.선비의 삶이 있었고, 양반의 삶이 있었으며, 서민들의 삶이 계층적으로 분리 되고 있었다.조선의 왕과 왕비,그리고 그 측근들의 그림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림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그림 속의 다양한 모습들을 역사적 사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사진이 없었던 그 시대를 상상하고 ,재현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그림들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그 시대가 지금 현재와 가장 가깝거니와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고조선의 역사와 가야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추측에 의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는 조선의 태조의 어진이 먼저 등장하고 있다.고려말 무장으로서 역성혁명에 성공한 전지적인 인물 태조의 어진이 상징하는 바는 상당한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우리는 조선 시대의 27대 임금의 어진이 모두 있었건만, 6.25 동란을 거치면서, 현존하는 어진은 태조, 영조,철종,고종, 순종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종묘와 사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건만,종묘와 사직이 무너지면서,조선의 기틀도 함께 무너지는 아픔이 있으며, 종묘와 사직을 지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27대 임금과 28개의 조선 회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그 시대의 문화적인 특징,그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졌으며, 어떤 삶의 가치관을 가졌는지 우리는 역사적인 사료와 함께 그림을 통해서 상상하게 되고 ,재현한다.이 책은 27대 임금을 건국-수성-혼란-경장-파국으로 나귀고 있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와 나라의 기틀을 형성하면서, 역사적인 안타까움과 함께 하게 된다.특히 임진왜란을 수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광해군은 힘의 논리에 밀려 결국에는 폐위되었으며, 노산군이었던 단종과 그 뒤를 이은 세조는 단종 복위운동을 펼친 집현전 학사들에게 그에 응당한 벌을 내리게 된 안타까운 역사와 함께 하였다.
<독서당계회도>와 <무이구곡도>이 두 그림은 선조 임금때 그려진 그림이었다.나라가 수성에서 혼란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조선의 혼란한 상황과 묘하게 엮이고 있었다.그건 나라의 전쟁이 일어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그 원인 제공자였던 사대부는 여전히 현실을 돌아보지 못하고 이상향을 쫒고 있는 안일한 모습들을 상상하게 된다.여전히 풍류를 읊으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하는 그들의 모습들은 때로는 안타까움의 실체였으며, 유교의 나라 조선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왕의 어진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조선의 역사를 보면서 참 아니러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조선에 비해서 강한 나라 중국은 거대한 땅이 분열과 통합을 거치면서, 300년을은 넘긴 나라들이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조선은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무능하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면서, 몸을 사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다양한 발자취를 보며,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아니면 조선의 선비처럼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서,풍류를 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