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주 따듯한 떨림
김인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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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싱의 오래된 다리로 읽히는 게 아니라, 사오싱이 오래된 다리고, 오래된 다리가 바로 사오싱이라는 소리로 읽힌다.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에만 10,,160 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오싱은 일만교의 도시라고 불린다.다섯 걸음 안에 만나고,열 걸음 안에 건너게 된다는 다리들,그토록 많은 다리를 건너고, 건너고, 또 건너면 내 인생의 무언가, 어느 지점도 건너게 되지 않겠나. 인생은 못 건너도 다리는 건너지 않겠나.건너기 힘든 대신 다리나 실컷 건너면 그래도 풀리는 뭐가 있지 않겠나.건너는 일이 뭐 별거 아닌 거처럼 여겨지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사오싱으로 간다. (-13-)


저둥운하는 닝보에서 시작해 사오싱을 거쳐 항저우까지 이어지는 운하다.이 운하는 징항운하, 즉 항저우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운하와 다시 이어져 수이탕운하와 함께 대운하라고 불린다.대운하의 길이는 이천칠백 킬로미터에 이른다.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사백 킬로미터이니, 서울과 부산을 일곱 번쯤 왕복하는 거리가 되겠다. (-36-)


나는 루쉰을 언제부터 좋아했나,생각해본다.여러 번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내 대학시절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내가 대학을 다니던 당시는 혁명의 시대, 세상의 모든 혁명을 공부했고, 세상의 모든 혁명가들을 마음 깊이 사랑했다.그들의 꿈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고, 내 마음 안에서 부풀다가 ,그들과 함께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같이 죽음을 맞기도 했다.루쉰을 이 문장으로부터 좋아하기 시작하지는 않았겠으나,이 문장이 마음 안으로 들어와 뭔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낸 적이 있다. (-66-)


잘못이구나, 잘못이구나, 잘못이구나 세 번 외친 절구는 '그만두자,그만두자, 그만두자'로 이어진다.
그래야 할까,그만둬야 할까,그만두는 게 맞는 걸까.나는 시구를 좇아 세 번만으로는 그만두게 될 것 같지는 않다.그렇다면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해 외쳐야 그만두게 될까, 또 중얼거려본다. (-126-)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저 탑에 이르면 올라가야 할까? 탑은 꼭 오르려고 있는 곳일까? 그래서 반드시 올라가야 할까.뒤를 돌아본다.내가 걸어온 길, 내가 들렀던 가게,내가 사먹었던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되돌아본다.고작 한 시간,혹은 한 시간 반? 기껏해야 두 사간도 못 미쳤을 것이다. (-141-)


인간은 깊이 생각하고,깊이 사유한다.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얻게 된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장소와 공간을 통해서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위로와 평화의 공간에 대해서 그걸 '고향'이라 부르며, 때로는 공간의 요람이라 부른다.고향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았던 곳,내가 느꼈던 곳곳에 요람이 있다면, 내 삶은 좀 더 여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져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작가 김인숙님에게 평안과 위로의 공간은 저 먼 타향 중국의 사오싱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사오싱은 물의 공간이다.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물이 흐르는 곳곳에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일만개의 다리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치이며, 그들의 삶의 뿌리가 된다. 그건 그곳을 곡 가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익숙함에서 낯선 공간으로 가게 되면, 우리는 좀더 마음을 다잡게 되고, 낯설음을 낯설음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살아가면서,놓치고 잇었던 것들,그것들이 저자에게 삶의 씨앗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사오싱은 루쉰의 대표작 '아큐정전'의 문학의 뿌리였다. 그의 작품 하나 하나 오감을 통해 느끼게 되었고, 그 느낌을 공간으로 확대하게 된다.글자로만 보면 생생하게 느껴지지 못하는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는 그렇게 사오싱에 대한 장소의 애착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사오싱에 마음을 천착하게 되었다.천착함으로서, 사오심을 탐색하게 되었으며, 탐색하는 과정에서 심연으로 스스로를 밀어 놓게 되었다.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조차 사오싱이라는 장소를 파괴하지 못하였고, 수천년의 역사의 큰 물줄기를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내 앞에 놓여진 수많은 문제들이 하찮게 여겨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찮게 여겨지거나 대수롭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가치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답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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