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리랑카에서 살아봤는데요 - 홍호표 로컬 인터뷰집
홍호표 지음 / 책과이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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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는 대가족이 많다.결혼해도 대부분 부모 집에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방이 부족하면 옆에 덧붙여 지었다.한국국제협력단 단원에게 싱할라어를 가르치는 차마리 선생은 친정어머니를 모셔와서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대가족 제도가 유지되는 데는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하나는 과거의 한국처럼 전통에 따르는 것이다.대부분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살기 때문에 촌락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18-)


"신용카드란 뭡니까? 신용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있는데도 '나'를 믿지 못하니까 별도의 신용카드가 필요한 거지요. 결국 신용카드는 신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여기는 아직 '신용사회'로구나! 과거 한국이 그랬듯이. (-68-)


-지금은 타자기를 쓰지 않습니다.30,40년 전만 해도 사용했습니다.제가 대학 다닐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려 학내 영자신문을 만들었습니다.싱할라어 자판이 있네요?
"네 ,싱할라어로 칩니다."
교실에는 40년이 넘은 타자기 20여대가 있었다.사람들은 타자 교실을 '골동품 가게'라고 불렀다.(-88-)


타밀 소녀의 첫 생리 기념의식이 있었다.아침부터 두 사람이 파티 장소인 윈디 네스트 대문 위에 뭔가를 매달았다.프린시 아주머니가 말했다.
"오늘 행사의 표시이자 장식입니다.타밀 관습인데 대문 양쪽에 하나씩 바나나 두 송이를 매달아 첫 생리일 '말왛라 디나여' 축하파티가 있음을 알리는 겁니다."
"말와라 디나여 행사는 어떻게 합니까?
"딸이 12세, 13세가 되어 초경을 하면 읽단 방에 가둬놓습니다.고기는 못 먹고 채식만 해야 합니다.목욕도 할 수 없습니다.끝나고 방에서 나와 목욕하고 식사한 뒤 잔치를 합니다."((-142-)


사람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가 결혼식 부조였다.한국처럼 돈을 봉투에 담아 건네야 했다.부조 액수는 장소와 친소관계에 따라 차이가 났다.부조금의 기준은 식대였다.보통 지방도시 작은 식장의 경우 2000루피에서 2500루피를 부조했다. (-205-)


"특별 사면은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하다.특별사면을 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대변인은 "현재 각종 범죄로 수감 중인 종교 지도자는 모두 18명이며 이 가운데 불교 지도자가 15명"이라고 밝혔다.기사에 따르면 다른 승려 한 명은 법정 모독될오 2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259-)


무료 음식 보시인 단살은 이날 모두 여섯 집에서 마련했다.
"불교 신도들은 단살을 좋아합니다.남을 대접하기 좋아해요. 스님 식사 당번이 있듯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기본적으로 자원하는 겁니다."(-293-)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는 거의 대부분 우리 나라보다 더 잘 살았던 나라들의 역사들이 담겨져 있다.그들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들의 문화를 습득하고,그들의 관습을 배워 나가면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00여개 나라의 모든 국가의 역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선별해서 역사와 문화를 익혀 나가고 있다.즉 우리가 알고 있는 스리랑카의 역사는 극히 일부분이며,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반면 스리랑카나 스리랑카인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그들은 한국을 동경하고, 배우고 싶어한다.우리 나라가 최빈곤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당연한 듯 보이지만 스리랑카인들에게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우리가 스리랑카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다.경제,문화,관습, 역사,정치까지 그들의 사회적 인프라에 비해서 한국에 대한 앓의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가 한국보다 더 잘 살지 못하는 나라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성공이나 경제적 이익을 돕기 위해서다. 때로는 상호 협력관게에 놓여질 수 있고, 경제적 상호이익을 꾀할 수 있다.다행스럽게도 그들은 한국을 배우려 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리랑카인들과 가까이 하기 쉽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스리랑카의 문화적 동일성,생활패턴은 바로 한국의 1990년대의 모습과 흡사하다. 타자기를 쓰고, 결혼식,장례식은 한국과 닮아있다. 저자가 스리랑카인들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건 우리가 놓치고 잊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이다.분명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지만,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들은 분명히 존재한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정이 있었고, 자연을 보호할 줄 알았던 과거의 모습,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가 한국에는 언제부터 사라지고 있다.한편 한국에 비해 스리랑카의 열악한 모습도 분명 존재하였다.한국인의 기호식품 담배가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스리랑카에서는 5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왠만하면 피우기 힘든 스리랑카 담배에는 그들의 세금이 들어가 있으며, 그들이 한달 버는 30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기호식품 담배는 분명 비싼 측면이 있다.스리랑카는 불교 나라이면서,힌두교와 무슬림의 영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간헐적으로 이슬람 테러가 일어나고 있으며, 불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그래서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으로 인해 종교인들이 특별 사면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한국의 정치인들에게 특별사면을 하는 것처럼 스리랑카는 불교인들에게 특별사면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한권의 책을 통해서 한국과 스리랑카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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