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자, 이상훈 - 18.44미터의 약속
김태훈 지음 / 소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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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훈은 낙동강 오리알 같은 처지로 중학교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출신 탓도 있겠지만, 신입생 시절 상훈은 팀 내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하루는 훈련을 빠졌는데 이튿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분위기도 신길화랑 때와는 너무 달랐다.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기합과 얼차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됐다.(-59-)


운동은 물론이고 하루 모든 행동들을 낱낱이 기록한 노트가 하나둘 쌓이는 걸 보면서 상훈은 "이게 돈이구나"싶었다.몸을 계산으로 쓰는 선수들에게 이보다 더 자세한 보고서는 없었다.하루하루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관리했는지가 노트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었다.몸값을 계선해야 하는 구단도 선수에 관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정보이기도 했다.(-129-)


한국사회는 '성공'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미국에 진출한 투수라면 메이저리그에 선발로 10승 정도는 해야 하고, 타자라면 2할 5푼 이사은 치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돼야 한다는 나름의 대중적인 기준이 있다.그런 성취의 관점이라면 상훈의 미국행은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184-)


기타리스트 슬래시를 무척 좋아했던 상훈은 헤어스타일도 긴머리에 풍성한 파마로 멋을 부렸다.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두피에 기름기가 많아 하루라도 감지 않으면 떡이 졌다.그런데 파마를 했더니 떡 지는 현상이 줄어들었다.기왕 파마할 거라면 슬래시 슽일이 좋아다. (-245-)


상훈은 그래서 야구를 자주 '행위예술'이라고 부른다.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무대 위레서 최고의 춤을 출 수 있어야 진정한 춤꾼이듯이, 투수 또한 마운드 위에서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300-)


야구선수 김영신, 선동열, 김용수, 박철순, 이만수, 장종훈, 정민철, 송진우,양준혁, 최동원,이종범, 박경완, 이승엽,이병규 이들 열네명은 영구 결번된 선수이다. 영구결번된 선수 중에는 형대의 정민태 선수, 그리고 LG의 이상훈 선수가 없다. 특히 이상훈 선수는 20승 투수로서 LG의 프랜차이즈 선수이다.하지만 이상훈 선수는 인기도 많았지만 안티도 상당히 많았던 기억이 있다. 구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언론의 왜곡된 기사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에 먹칠 아닌 먹칠을 할 수 박에 없었던 선수, 이 책에는 그의 오해와 진실에 관한 애구 발자취를 소개하고 있다.


삼손리,야생마,이 두 별명은 이상훈과 엮이는 별명이다.야생마처럼 긴머리를 휘나리며, 열심히 야구를 즐겼던 선수, 누구보다 팀플레이를 우선해왔던 이상훈은 전천후 투수로서 LG 선수로서는 20승에 등극한 선수이다. 그러나 그의 원정길에서의 돌발적인 행동은 구단에서 이상훈을 차별하였고, 그로 인해 이상훈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하지만 이상훈은 이상훈이었다.야구 가까운 곳에는 언제나 이상훈이 있었다.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가는 선수였으며, 국내 프로 리그 뿐만 아니라 독립리그에도 관심가지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이상훈은 야구게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책 한권, 이상훈의 야구 역사를 들여다 보면서 1990년대 야구의 모습들이 그려지고 말았다.1992년 대학리그에서 존재감 없었던 이상훈은 LG 선수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리고 이광환,김성근 감독의 지도하에 이상훈은 자신의 약점이 사라지고,무서운 야구선수가 되었다.야구를 사랑하고, 자신만의 소신이 있었던 선수에게 이순철 감독과의 만남은 악연이 되었다.선수로서 자신이 해도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해태시절 군기반장이었던 이순철 감독 때문이다.이순철 감독에게 다까기 인형이라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하지만 이순철 감독은 자신의 아들에게도 혹독한 평가를 내렸고,팬들은 그의 성향을 이해하게 되었다.하지만 이상훈과 이순철 감독은 불과 불이 붙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신임감독과 고참 선수간의 불화는 야구 플레이를 해치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LG 구단주는 그런 상황을 꿈꾸고 있었다.


험난한 야구 인생은 이상훈 선수에게 해당된다.최동원 선수도 이상훈 선수와 비슷한 길을 건너게 된다.하나의 구단에게 우승을 안겨준 선수에게 구단은 언제나 매몰찻고 이상훈은 그때마다 멘탈이 흔들였다. 하지만 팬들은 이상훈을 조중하고 있다.자신만의 소신과 야구 철학,한국 분 아니라, 일본,미국으로 가서 그 나라의 야구 기법을 배우고 싶었던 이상훈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주관대로 움직이게 된다.프랜차이즈 선수, 유지현,기재현 선수와 함께 LG의 주축선수였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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