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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예수 - 문학에 답하는 예수로 수다 떨기
최혜정 지음 / 이비락 / 2018년 6월
평점 :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은빛 여어의 의문은 그의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은빛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향한다고 말하는 눈맑은 영어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가 오직 알을 낳기 위해서일가?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 그게 우리 삶의 전부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닐 거야.연어에게는 연어만의 독특한 삶의 이유가 있을 거야.우리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우리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3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사랑은 친절합니다.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 냅니다.사랑은 영원합니다.예언이 있다가도 없고,방언이 있다가 그치며, 지식이 있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105-)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고 즐거움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자연을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기도 했지요.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 문명 그 자체는 놀랍고 위대합니다.인간의 지혜가 인간을 발전시키는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으니까요.하지만 자연과 공존하며 문명을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탐욕적인 정복용으로 자연을 짓밟고 문명을 세우려는 인간의 욕심이 아름다운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42-)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는 데에 태풍과 천둥과 벼락의 시절,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의 몇 날이 오롯이 담겨 있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빨갛게 익은 대추를 보며 시인은 대추가 견뎌냈을 시간과 어려움을 떠올렸겠지요.그리고 더불어 우리 인생의 영글어짐도 몰아치는 태풍과 번개, 무서리와 땡볕을 견뎌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237-)
"몸소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위해 살지 않고 의를 위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상처를 입으심으로써 우리가 낫게 된 것입니다.(베드로전서 2장 24절) (-293-)
삶에 대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보게 됩니다.우리의 삶은 과거보다 편리해졌고, 더 나아졌습니다.그러면서 우리 삶은 점점 더 새로운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하나에서 열가지 스스로 자급자족해왔던 과거의 삶은 퇴색되었고,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생산의 주체였고, 소비의 주체였던 우리의 삶이 어느 순간부터 소비의 주체로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자본의 힘은 그렇게 우리 삶을 급격하게 바꿔 놓았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하였습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 죄의식은 예수 그히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서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그러나 점점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스스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면서, 내 앞에 놓여진 것들이 그냥 자본의 가치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갈등의 씨앗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생산의 가치를 중요하개 생각했던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고, 자본의 힘이 대두되었습니다.그럼으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게 됩니다. 나를 이해하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속성들은 그냠 쉽게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나에게 이익이 되면 그대로 들이밀려고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은 또다른 파괴로 이어지게 되었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하게 되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지 못하게 됩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소중한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우리는 어느 순간 절차와 원칙대로 살아가면 멍천한 사람,순진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세상 사람은 그것을 가벼이 여기고, 가치를 낮춰 놓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사람이 보지 않더라도 하나니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새 삶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살피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자연의 희노애락을 우리 스스로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