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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이야기 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ㅣ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3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0월
평점 :
사람들이 떠올리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의지력의 화신이요,정치적 희생자며 조선 후기의 대표 지성이다.정조를 도와 한강 배다리와 화성 거중기를 만들고 18년간 유배 생활 등을 통해 500권이 넘는 다양한 책을 저술한 실학의 집대성자로 각인되어 있으니 그럴 만하다.(-37-)
음력 11월 한겨울이 시작된 강진에서의 생활이야 제대로 먹고 잘 곳조차 없는 나락의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천주쟁이'라며 몹쓸 병 걸린 놈 취급을 하는 뭇사람의 눈길이었다. 무지하고 선한 백성들이야 천주가 뭔지, 서학이 뭔지 알 일이 아니고, 그저 나라에서 나쁜 것에 물들었다니 그리 믿을 수 밖에...(-43-)
그 대신 효종의 사망과 관련해 대비의 상복을 얼마로 할 것이냐 하는, 이른바 예송논쟁으로 옮아간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국정 현안이었다.군신관계 및 왕위 계승 원칙에 대한 입장, 퇴계와 율곡에서 비롯된 이념 논쟁 등이 저변에 깔려 있는 정치적 노선 투쟁이었기 때문이다.패배한 측은 깨끗이 물러나는 법인지라,패자인 허목은 삼척으로 좌천되었다.(-129-)
이러한 현상은 한 개인 또는 집안의 고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사회적으로는 자신의 거주지를 무단 이탈해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 마을의 공동화 현상을 가져왔다.정조 시절,'원래 2만여 호였던 고을이 지금은 삼으로 인한 폐단 때무에 4,518 호로 줄었다'는 장계가 올라오기도 했다.더욱 큰 문제는 이로 인해 국역 담당 인력의 고갈 현상까지 나타나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국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215-)
역사란 참으로 요지경 속이다.이처럼 이성계의 꿈속에 나타나 호령하던 왕건에 의해 패망한 군주 또한 숭의전에서 지척인 이곳 연천 땅에 자리하고 있으니, 승자의 미소와 패자의 눈물이 교차하는 형국이다.신라의 마지막 임금이던 경순왕을을 이르는 말이다. 왕릉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지경으로 그저 왠만한 조선 사대부의 묘 정도다. 크기가 왜소함은 물론, 머리에는 '지뢰지대'라고 쓰인 철조망을 이고 있고.,혼유석, 양석,장명등,망부석 등 몇 가지 석물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_253-)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상생과 소멸이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순환된다.자연은 그 과정에서 생사필멸이 교차되었고,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도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왜 우리는 인문학을 접하고, 역사를 공부하느냐고 물어본다면,인문학은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정답을 요구하던 과거의 모습은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문제들만 답을 찾아 나가고 있다.그건 결국에는 각자도생을 꿈꾸지만 결론은 각자소멸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기적인 인간의 내밀한 속성을 파악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기준과 법칙을 찾아 나간다.특히 인문학에서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한 인물과 그 시대상이 교차될 때의 순간이다.역사는 패자의 역사가 아니라 승자의 역사라 하였던가, 권력자가 살았을 당시만 하여도 그 시대에 걸맞게 최고의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사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패자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에 가려지고 덮여지기 때문이다.우리가 보았던 신라시대 마지막 왕의 업적이나 무덤, 교려시대 마지막 왕의 업적이마 무덤을 보면 권력의 무상함이 저절로 흐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다행스럽게도 과거의 역사들은 파묻혀 버렸건만 , 조선의 역사는 현존하고 있다.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그 시대상은 추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의 시,서,화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찾아볼 수 있었으며, 다산 정약용은 유배라는 암울한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살펴본다면,우리가 어디로 삶을 향하고 있어야 하는지 갸늠할 수 있다.
시대란 항상 그렇다.인문학은 과거의 우리 모습들을 향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결과들 속에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있다.그건 현재 우리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며, 살아가면서 항상 위기와 기회가 교차될 수 있다.다산 정약용의 삶에서 보듯이 내 앞에 놓여진 위기가 항상 위기로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역사를 모른다면 우리는 위기를 위기 그 자체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안다면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바꿔 나가면서,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게 된다.이 책을 읽는 이유, 우리 산천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재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 보편적인 가치들을 찾으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