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 - 거리를 두면 알게 되는 인생의 이면
조미정 지음 / 웨일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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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 퍼스의 조용한 마을, 이층집에 살고 있다.1층에 거실과 주방이 있고 2층에 거실 또 하나, 방 세개가 있다.미국 드라마에 나올 법한 2층짜리 호화 저택에 살고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호화 저택은 아니다.이 집은 70년대에 지어졌고 온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방문과 똑같이 생긴 현관문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침입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하다. (-21-)


호주에 발 딛는 순간 가장 먼저 감당해야 했던 일은 '혼자'라는 기분을 받아들이는 거였다.그다음으로는 낯선 나라의 일상과 생활 습관,인간관계,직장 생활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부탁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많아져서 실수하게 된다.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무기력해지고,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 (-80-)


나는 알수 없는 타인과, 내가 날고 있다고 믿었던 타인을 획일적인 도덕성의 잣대로 경솔하게 판단했다.와이를 비난하는 내 말에 일말의 도덕적 우월감도 없었느냐고 물으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때대로 우리는 사회 정의감에 취해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를 내세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도 하니까. (-162-)


밝은 것은 때로 나를 불안하고 부끄럽게 했다.그래서 낮에도 암막 커튼을 딛고 어둠 속에 있기를 택할 때가 많았다.108배를 하거나 깊은 명상에 집중할 때도 빛이 난 자리보다 아둠 속이 편안했다.108배를 할 때는 매번 누군가 떠오르는데 오늘은 지난 주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생각이 났다.(-226-)


아담은 영국은 그립지 않지만 축구는 그립다고 했다.친척이나 친구들이 딱히 보고지 않지만 프리미어 리그만큼은 경기장에서 관람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나는 한국은 그립지 않지만 모국어로 밥 먹어 먹고살던 시절과, 모국어로 뒷담화를 하고 공공기관에 전화할 때 쫄지 안하도 되는 처지는 그립다고 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평소 아담의 얼굴과 내 얼굴에 새겨진 무기력함의 속성을 알아챘다.체념이었다. (-180-)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공간을 이동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익숙할 때는 당연하게 누렸던 혜택들이 ,익숙했던 관계글이, 낯선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혜택과 관계가 될 수 있다.도시에서 당연하게 써왔던 인터넷과 전기가 시골에 가면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그나마 같은 나라에서 이동은 조금 불편하지만,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다.언어적 동질감이 나에게 때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언어가 다른 낯선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한국에서 호주로 공간을 이동한 이 책을 쓴 조미정씨가 그러하다.


대한민국에서 호주로 가게 된 저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백인사회에서 이방인이 된 것이다.불편함을 넘어서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그것이 호주에서의 또다른 삶이었다.함께 살아가지만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그것은 저자의 숙명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한국이라는 곳은 사람들 사이에 여유가 없고, 사람간의 잃어버린 것이 많아서였다.촘촘하게 엮이게 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딪치고, 여유를 잃어버린채 도시에서 부유하게 된다. 저자는 호주로 떠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익숙함 속에서 살아가는 불편함 때문이다.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불편함과는 차이가 있다.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였다.포기하지 않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이 찾아올 때면 저자는 스스로를 달래 나가야 했으며,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낯선 나라에서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바로 저자의 특별한 삶,그 삶 속에 체념과 포기가 느껴졌다.체념하고 포기했더니 새로운 것이 등장하였다.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게 된 거였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그리움을 알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깨우치기 시작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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